취약계층의 불법 사금융 피해를 막기 위해 출시된 ‘소액생계비대출’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정식으로 출시한 긴급생계비대출은 신용평점 하위 20% 이하, 연소득 3500만원 이하 성인들이며 연체 이력을 따지지 않죠. 대체로 대부분의 정부지원대출이 연체 이력이 있으면 대출 지원이 안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조건 자체는 파격적입니다.
대출 금액은 ‘소액’이라는 이름에 맞게 최대 100만원으로 최초 50만원 대출 후 이자를 6개월 이상 성실납부 시 추가대출이 가능합니다. 지원 용도는 생계비 용도로 제한되며, 대출 만기는 기본 1년이며, 이자 성실납부 시 본인의 신청을 통해 최장 5년 이내에서 만기를 연장할 수 있습니다. 대출금리는 최초 연 15.9%로 다소 높은 수준이지만. 차주가 금융교육을 이수하면 0.5%p, 성실하게 상환하면 6개월마다 3.0%p씩 인하돼 최저금리는 연 9.4%까지 낮아집니다.
소액생계비대출의 성적은 말 그대로 ‘대성공’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실제로 기자가 출시 당일인 27일 오전 서민금융지원센터에 방문했을 당시 센터에는 앉을 장소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을 정도였으니까요. 결국 소액생계비대출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조기 소진이 예상되면서 추가 재원이 필요해졌다고 합니다.
다행히 금융당국은 국민행복기금 초과회수금을 활용해 추가 재원을 최대 640억원을 추가로 조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내년부터는 예산을 받아 추가 재원 공급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며 “추후 수요가 줄어들고 일부 회수되는 자금도 있을테니 선순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저신용 서민들에게 필요한 자금을 빠르게 공급하는 소액생계비대출이 꾸준히 이어지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다행입니다만, 한편으로는 소액생계비대출의 ‘흥행’ 자체가 기자의 입맛을 씁쓸하게 합니다. 고금리는 지속되고, 서민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주는 곳들이 사라지는 상황 속 50만원, 100만원조차 없는 이들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또한 소액생계비대출을 받아간 연령을 살펴보면 경제활동이 가장 왕성한 세대인 30-50대가 대출 신청 중 8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청년이나 노년층처럼 경제활동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이 아니라 경제활동의 주축 연령대들이 저소득·저신용자로 내몰렸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민간 부문에서 서민금융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2금융권은 대출문턱을 올리거나, 자금공급을 아예 하지 않는 등 한파가 지속되는 상황입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가계신용대출을 취급한 저축은행 33곳 중 14곳이 신용점수 600점 이하 차주를 대상으로 신용대출을 내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에는 10곳이었으나 3개월 사이 4곳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대부금융업체들의 경우 생존의 문제를 겪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대부금융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등록 대부업체 중 NICE신용평가 기준 상위 69곳의 지난 1월 신규대출 금액은 428억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88.9% 감소했습니다. 대형 회원사(25곳) 중 15곳은 아예 신규대출을 중단했고요.
더 안타까운 것은 서민금융 시장의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고금리가 지속되는 가운데 법정최고금리가 20%로 제한되다 보니 조달 금리는 여전히 높기 때문이죠.
서민금융 시장의 상황이 이처럼 우울하니 정부와 금융당국이 내려준 ‘동앗줄’인 긴급생계비대출이 흥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흥행에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오히려 지금의 인기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서민금융 시장의 복원이라는 근본적인 해결법 마련에 착수하길 바랍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