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기관도, 급여도 ‘미정’… 허가돼도 첫 발 못 뗀 디지털치료기기

처방기관도, 급여도 ‘미정’… 허가돼도 첫 발 못 뗀 디지털치료기기

2월·4월 잇따라 제품 허가… 국내 최초 디지털치료기기 탄생
‘NECA 혁신기술평가→복지부 고시→임상계획서 승인’ 최대 6개월 소요
업계 “처방 기관 적다면 임시 급여로 접근성 넓혀줘야”

기사승인 2023-05-24 06:00:08
웰트의 불면증 인지행동치료(디지털치료기기) 어플리케이션 화면. 환자는 의사 처방 하에 해당 어플리케이션을 쓸 수 있다. 수면 양상을 살펴보고 교육을 받는 등 수면 습관 변화를 도모한다.   웰트

국내 최초 디지털치료기기가 허가 받은 지 3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의료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넘어야 할 부처 심의 과정이 산적해 첫 처방까지 최소 수개월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허가를 받은 디지털치료기기는 두 건이다. 지난 2월 에임메드의 불면증 치료 디지털치료기기가 국내 최초로 허가된 데 이어 4월 웰트도 역시 불면증을 해소하는 제품으로 2호 타이틀을 얻어냈다. 이 외에도 라이프시맨틱스는 만성폐쇄성폐질환, 뉴냅스는 뇌신경 손상 환자의 시야장애, 하이는 불안장애, 에버엑스는 근골격계 재활을 겨냥해 다양한 디지털치료기기를 개발 중이거나 허가 신청을 앞두고 있다. 

디지털치료기기란 의학적 장애나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이나 가상현실 등을 활용해 부작용 없이 증상을 개선시키는 이점이 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개발 사례가 많지 않은 분야인 만큼 병원에서의 활용이 더딘 상황이다. 디지털치료기기가 정식 허가를 받은 사례는 영국과 독일, 일본,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국내의 경우 식약처가 디지털치료기기를 혁신의료기기로 인정해 빠르게 허가를 받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지만, 실질적으로 병원에 진입하려면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신의료기술평가와 보건복지부 고시를 거쳐 임상계획서 승인까지 받아야 한다. NECA에서는 제품의 안전성, 효과성, 경제성, 윤리 그리고 임상계획서 등을 평가한다. 전체적인 과정에서 약 3~6개월이 소요된다. 

현재 1, 2호 디지털의료기기 허가를 얻은 기업 두 곳도 이런 상황에 놓여있다. 에임메드는 NECA에 제출할 연구계획서를 준비 중이며, 웰트는 복지부 고시 전 단계에 있다. 에임메드 관계자는 “다음달 NECA 근거창출전문위원회 심의를 갖고 7월에는 처방이 이뤄질 예정이다”라며 “다만 심의 과정에서 1~2회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이를 감안하면 8~9월에야 처방이 본격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웰트는 올해 말 병원 진입을 예상했다. 

병원에 진입하더라도 모든 의료기관에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복지부가 지정한 일부 대학병원에서만 시범사업 차원의 처방이 가능하다. 이후 3년이 지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평가를 진행하는데 비용 대비 효과성이 입증돼야 정식 등재를 받고 모든 의료기관에서 사용이 가능해진다. 

디지털의료기기 치료는 급여 여부도 결정되지 않았다. 이는 업계의 우려를 자아낸다. 식약처는 허가 당시 비급여로 처방될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지만, 업계는 ‘임시 급여’ 적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키웠다. 이에 심평원은 해외 사례를 참고하면서 업계 의견도 반영할 수 있도록 고민해보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한 의료기기 업계 관계자는 “임상계획서가 승인되면 정부에서 지정한 3~5곳 의료기관에서만 처방이 이뤄진다”며 “디지털치료기기는 임상데이터가 전무해 향후 비용 효과성 평가를 제대로 받으려면 최대한 많은 환자 데이터를 모아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처방이 가능한 의료기관도 적은데, 비급여로 처방된다면 이를 활용하려는 환자나 의사는 적을 것이다”라며 “불면증의 경우 의원급 처방이 주로 이뤄지는데, 이 같은 부분도 충분히 고려될 지 의구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17년 세계 최초로 디지털치료기기를 출시했던 미국의 페어 테라퓨틱스는 올해 파산을 결정했다. 원인은 보험 적용에 실패해 시장 경쟁력을 상실한데서 기인했다. 벤처 컨설팅 기업의 한 임원진은 “페어 테라퓨틱스는 기기의 효과와 별개로 환자의 관심이나 사용 지속도가 떨어지면 생존하기 힘든 디지털치료기기 시장 상황을 내비췄다”며 “우리나라도 빠른 허가보다는 시장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수가, 급여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치료기기는 의사나 환자 모두에게 생소한 제품으로, 효능이나 안전성 부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진다. 지금과 같은 진입 방식으로는 환자에게 적극적인 홍보도 어렵다. 따라서 최소한의 급여로 접근성을 넓혀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내 활용이 미진할 것을 대비해 미국, 독일 등과 협력을 맺어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만이라도 임상·진입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도입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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