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가뭄 장기화…“약 만들고 싶어도 재료가 없다”

의약품 가뭄 장기화…“약 만들고 싶어도 재료가 없다”

SNS·맘카페서 “약 없어 약국 찾아 헤맸다” 후기 줄 이어
“원료 수급 더 어려워지면 완제의약품 공급난 심화될 것”
제약 업계, 약가 우대·규제 완화 등 정부 뒷받침 촉구

기사승인 2023-05-24 06:00:12
쿠키뉴스 자료사진

# 중증 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는 가족이 다량의 약을 28년째 복용 중입니다. 지난주 서울대학교 정문 앞 약국 두 군데에서 처방약이 없다고 해서 약을 찾아 헤맸습니다. 줄곧 같은 약만 먹어왔는데 약이 없는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 아이가 독감에 걸려서 병원에 갔는데 아이들 먹는 타미플루가 품절돼서 수액을 맞았습니다. 독감 후유증이 남아 항생제를 먹여야 하는데 항생제도 지금 다 품절이라서 집 근처 약국들에 전화 돌렸고 겨우 약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종합병원 근처 약국도 약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 아이가 코로나19에 걸려 풀미칸분무용현탁액, 벤토린네뷸2.5㎎을 처방 받았는데 동네 약국 네 곳을 돌았는데도 약이 없더라고요. 다행히 딱 1군데에 재고가 있어서 간신히 받았어요.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았는데 약국에 약이 없어 약이 있는 약국을 찾아 헤맸다는 이야기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맘카페를 중심으로 줄을 잇고 있다. 현 의약품 부족 상황이 재작년 11월 겪은 요소수 사태와 겹쳐 보인다는 말이 나온다.

원료의약품 수급 ‘빨간불’에 제약 업계 한숨

코로나19와 독감이 함께 유행하는 ‘트윈데믹’으로 인해 의약품 수요가 폭증하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화되고 있다. 환자들은 약이 없어서 전전긍긍하지만 이 상황이 답답한 건 제약 업계도 마찬가지다. 업계는 약을 만들고 싶어도 완제의약품의 재료가 되는 ‘원료의약품’을 구하는 게 힘들어 의약품 제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제약 업계 관계자 A씨는 지난 23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충분한 완제의약품 생산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지만 원료의약품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매우 높다”며 “국내 완제의약품 자급률은 80%에 육박하지만 2021년 기준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4%에 불과하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원료 수급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경우 완제의약품 공급난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제약 업계 관계자 B씨는 “의약품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국내 원료 기업이 나서야 한다”면서도 “시장 우위에 있는 중국 업체와 경쟁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우리나라는 중국(36%)에서 가장 많은 원료를 수입했고 일본(12%), 인도(10%)가 뒤를 이었다. 3개국에서 수입한 물량은 전체 수입의 60%에 달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국산 원료 사용해 완제의약품 만드는 선순환 구조 돼야”

제약 업계는 당장 의약품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국내 완제의약품 기업이 국산 원료를 사용해 의약품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면 지금과 같은 문제가 또 발생해도 해결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제약 업계 관계자 C씨는 “해외 의존도가 높은 주력 제품의 경우 국산 원료를 사용해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완제의약품 기업, 즉 사용자들에게 국산 원료를 써야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원료의약품 기업인 공급자들이 원료 생산시설과 연구개발 투자를 활성활 수 있도록 약가 우대, 생산 지원, 규제 완화 등 정부의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팬데믹 등 비상시에 사용하는 백신이나 치료제, 필수의약품 등의 원료는 정부가 국내 제조사와 장기 계약을 체결하고 비축해 필요할 때 제약사에 신속히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제약 업계 관계자 D씨는 국산 원료 시장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그 다음 단계는 해외 시장 공략이라고 했다. 그는 “고부가가치 원료 생산 특화로 수출을 통한 선진국 시장 공략이 필요하다”며 “장기적으로 원료 공급망 강화 전략을 수립하고 고부가가치 원료의약품 부문을 선점해 해외시장에서의 자리를 확고히 하는 전략적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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