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유학생들은 모든 장소에 단속 없이 출입할 수 있다. 동행자 없는 외출도 가능하다.
어느 겨울날,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려던 나와 친구들은 같은 방을 쓰는 언니로부터 ‘오늘은 누구도 숙소를 떠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별다른 설명은 없었다. 언니의 표정과 말투는 엄숙하고 무거웠다.
갑작스러운 제제와 강압적 분위기에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숙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상했다. 평소 일요일에도 장사하던 기숙사 구내매점이 문을 열지 않았다. 창밖으로 몸을 반쯤 내밀고 밖을 내다봤다. 지도 선생님과 다른 유학생들이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온 세상의 소리가 사라진 것 같았다. 기괴한 침묵이 흘렀다. 분명 큰일이 생긴 것 같았다.
한 시간쯤이 지났을 무렵 같은 방 언니가 다시 방문을 두드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이어 “오늘은 외출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앞으로 사흘간은 큰 소리로 웃고 떠들지 말고, 음악도 크게 틀지 말라고 했다. 더불어 무거운 마음으로 애도해야 한다는 규칙도 전했다. 3일이 흘렀다. 숙소가 이처럼 조용했던 적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태양절은 유학생들이 꼭 참석해야 하는 행사 중 하나였다. 태양절에 찾은 만수대 동상은 이로써 두 개가 됐다. 돌이켜보면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다. 중국인인 나는 중국 지도자를 만난 적도, 마오 주석 묘지를 참배한 적도 없다. 북한에 유학 온 뒤에는 열병식에서 김정일과 김정은을 만났고, 금수산 태양궁전에서 김일성의 시신을 해마다 참배했다.
특히 태양궁전은 갈 때마다 번거로웠다. 매년 12월, 한겨울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다. 두꺼운 외투 안에 정장을 차려입고, 유학생들이 함께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도착하면 실외에서 40분 정도 대기해야 했다. 복잡한 보안 검사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태양궁전은 천장이 높았다. 대리석을 사용한 인테리어 때문인지, 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서인지 답답하고 추웠다. 김정일이 생전에 사용했던 책상도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 ‘맥북 컴퓨터’가 제일 눈에 띄었다.
참배할 땐 시신을 한 바퀴 돌고 90도로 인사를 세 차례 해야 했다. 어두운 방에는 작게 틀어놓은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시네’ 노래가 흘렀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마치 꼬리 밟기를 하듯 앞 사람의 발을 따라 움직였다. 조용히 걷는 소리만 건물 안에 울렸다.
살아있는 자의 기억 속에서 죽은 자가 잊히는 순간, 그들은 영원한 죽음을 맞이한다. 언젠가 봤던 영화 ‘코코’에 나온 말이다. 아마도 이들은 이러한 기억의 예식을 통해 자신들의 지도자를 살아있게 하는 것 같다.
기고=육준우(陆俊羽)·중국인유학생
홍익대학교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사수료. 홍익대학교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석사졸업. 북한 김형직사범대학교 학사졸업(조선어전공)
am529junw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