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정화 “어떤 식이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쿠키인터뷰]

엄정화 “어떤 식이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06-09 06:00:11
배우 겸 가수 엄정화. 사람엔터테인먼트 

배우 겸 가수 엄정화는 최근 진귀한 경험을 했다. 한 대학교 축제 무대에 오른 그에게 관중은 엄정화 대신 차정숙이란 이름을 연호했다. 데뷔 30주년인 그에게도 이런 반응은 색달랐다. 뿐만 아니다. 무대에서 그가 선뵌 ‘포이즌’(1998), ‘페스티벌’(1999), ‘D.I.S.C.O’(2008)을 대학생들이 우렁차게 따라 부르는 영상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끌었다.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노래를 ‘떼창’하는 모습에 엄정화는 어느 때보다도 울컥했단다. 지난 1일 서울 청담동 사람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난 엄정화는 “이 정도로 친근하게 사랑받은 때가 있었나 싶다”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이유 있는 인기다. 엄정화는 지난 4일 종영한 JTBC 토일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 주인공 차정숙 역을 맡아 열연했다. 차정숙은 죽음 문턱을 오간 이후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가 아닌 본인의 삶을 찾기 위해 발버둥친다. 냉혹한 현실에 뛰어들었지만 쉽게 움츠러들지 않는다. 고비가 있더라도 오롯이 자신만의 길을 택한다. 나이로 인한 편견을 비롯, 세상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내는 그의 모습은 드라마 인기 요인으로 꼽혔다. 실제 엄정화와 맞닿은 부분 또한 많았다. 그는 “요즘 느끼는 마음과 감정을 투영해 차정숙을 연기했다”고 돌아봤다.

‘닥터 차정숙’ 스틸컷. JTBC

엄정화는 차정숙에게 매 순간 공감했다고 한다. 나이 때문에 타박을 듣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그럴 때마다 대차게 맞서는 차정숙의 모습에서 힘을 얻었다. 차정숙은 ‘이제 의사 되면 곧 50살’이라는 남편 서인호(김병철)에게 ‘요즘 같은 백세 시대에 50살이면 청춘’이라고 일갈하거나 ‘젊은 친구가 잘못하면 실수지만 나이 먹은 사람의 잘못은 무능’이라는 상사 말에 ‘실수까지 무능으로 치부하는 건 부당하다’고 맞선다. 엄정화는 “차정숙이 우리 세대 마음을 대변하더라”며 “부르짖는 마음으로 정성스레 연기했다”고 말했다. 친정엄마 오덕례(김미경)와 함께하는 장면은 언제나 울컥함이 몰려왔다. “자식이라면 엄마에게 으레 가질 감정들”을 연기해야 해서다. 건강을 잃은 차정숙을 연기할 땐 병마와 싸우던 지난날을 떠올리기도 했다. 차정숙과 마찬가지로 엄정화 역시 큰일을 겪고 마음가짐부터 달라졌다.

“아픈 장면을 연기하다 보니 과거 수술이 끝나고 깨어났을 때가 떠오르더라고요. 그 순간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깨어났다는 자각은 하지만 외롭고, 그러면서도 감사했어요. 그런데 수술을 하고 나니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서 너무 힘든 거예요. 하지만 그런 마음에 잠식되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좋은 기운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긍정적인 친구들과 만나고 책을 읽거나 여행을 갔어요. 어느 정도 회복한 이후부터는 이 일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를 떠올리곤 했어요. 딱 마흔 되던 해였어요. 마음에 어떤 것들을 담아야 할지 생각하곤 했죠.”

‘닥터 차정숙’ 스틸컷. JTBC

엄정화를 일으키고 나아가게 한 건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신을 특정 이미지로만 규정하거나 소구하던 시대에도 열정만큼은 굴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원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했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거나 ‘내가 그건 해봤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럴 땐 본인을 들여다보고 좋아하는 일을 하나라도 해보세요. 작은 것 하나라도 일단 시작하면 새로운 시야가 열려요.” 그 역시도 이런 마음으로 일에 열중했다. 가수 활동이 대표적이다. 엄정화는 “생각 많던 예전과 달리 이젠 고민하지 않는다”며 “지금 내게는 무대에 오르는 댄스가수의 연령대를 넓혔다는 자부심이 있다”며 활짝 웃었다. 최근 방영 중인 tvN ‘댄스가수 유랑단’으로 오랜만에 가수 복귀한 엄정화는 신보 작업에도 한창이다. 그는 멈추지 않는다. “할 수 있다는 생각과 가고자 하는 열망”으로 뚜벅뚜벅 나아간다.

“‘유랑단’ 무대에서 저희는 예전 히트곡을 불러요. 하지만 그건 과거에 머무르려는 게 아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복기거든요. 출연 중인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나눴어요. 우리는 어떤 식이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요. 이전에는 뭐만 하면 이름 옆에 나이가 따라붙곤 했어요. 우스꽝스러운 나이인가 고민할 때도 있었죠. 그렇지만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자랑스러운 나이인가요? 이렇게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잖아요. 지금 하는 일에 더욱더 깊이 파고들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오래오래 더 잘해나갈 거예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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