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다른 사람을 '뒷담화'하다 보니

아내와 다른 사람을 '뒷담화'하다 보니

[지리산웰빙팜] 농사꾼 임송의 귀농일기(29)
귀농 후 아내와 시간 많아지니 일상의 소소한 불만 아내와 풀어

기사승인 2023-06-17 06:20:01
타인에 관해 험담하는 소위 뒷담화는, 주로 믿을 만한 사람과 한다. 아무에게나 뒷말을 늘어놨다가는 입 가벼운 사람 되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내가 주로 뒷담화를 늘어놓는 상대는 아내였다.

정확한 시기는 잘 가늠이 안 되지만 대략 7~8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아내와 다른 사람 험담을 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선지 그 무렵부터 아내와 다른 사람에 대해 험담하기 시작했다.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의 호젓한 산책길. 소소한 삶의 불만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길이다. 사진=임송

아마도 농촌에 내려온 이후 외부와의 접촉이 줄어들면서 아내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새로운 환경에서 살다 보니 일상의 소소한 불만들을 뒷담화로 풀었던 게 아닌가 싶다.

게다가 당시는 머리보다는 가슴이나 몸의 요구에 솔직해지자는 생각을 할 때라 내 안에서 일어나는 타인에 대한 불만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밖으로 쏟아냈다.

이렇게 시작된 뒷담화는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빗장이 풀리니 점점 자주 하게 되고 표현 강도도 날이 갈수록 세졌다.

처음에는 뒷담화 대상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이나 미안함 같은 것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느낌도 점점 옅어져 갔다. 급기야 별 느낌 없이 남 헐뜯는 얘기를 하는 정도로까지 발전됐다.

그런데 돌이켜 보니 이 뒷담화라는 것이, 뒷담화 대상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은 물론, 같이 뒷담화하는 사람들 자신과 나아가 두 사람(이 경우에는 나와 아내) 간의 신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것이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자기 안에 있던(혹은 두 사람이 공유하던) 어떤 소중한 것이 손상된 느낌이랄까.

옛말에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라는 말이 있다. 본디 이 말의 중점은 ‘개처럼 번다’보다는 ‘정승처럼 쓴다’라는 것에 있다고 이해했다. 어떻게 벌더라도 쓰는 것을 값어치 있게 잘 써야 한다는 경구로 받아들였던 것.
산책길에 만나는 편백나무 숲. 말을 내뱉기보다 숨을 들이 마시게 된다. 사진=임송

그런데 주변에서 보면 잘 쓰는 것보다는 버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야말로 체면 불고하고 돈 되는 일이면 뭐든지 하면서 슬쩍슬쩍 남 속이는 소위 양아치 짓도 서슴지 않는.

그런 사람을 보면 돈도 좋지만 뭐 저렇게까지 하나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 식구들을 위해 자신의 체면 따위는 개나 줘버리라는 식의 태도에서 가끔 제 식구들을 끔찍이 챙기는 일종의 ‘애정’이나 ‘헌신’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체면 불고하고 식구들을 위해 헌신하면 식구들로부터 그에 합당한 대접을 받을 만도 한데, 현실은 꼭 그런 것 같지 않다. 그런 사람 중에 식구들로부터 사랑과 존중을 받기보다는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집안 내에서 은근히 무시당하기까지 하는 경우를 가끔 본다.

밖에서 하는 것처럼 집안에서도 사람보다 돈을 귀하게 여겨서 그럴까? 아니면, 돈만 밝히는 남편이나 아빠가 자랑스럽지 못해서 그럴까?

이유야 어찌 됐든 그래도 나름대로는 식구들에 대한 의무나 사랑을 구현하고자 한 것일 텐데 그런 곤경에 처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일 때도 있다.

글을 쓰면서 이 문제에 대한 식구들의 느낌이 궁금해 딸 아이에게 물었다. “개처럼 벌어서 돈을 많이 갖다 주는 아빠가 좋니? 집에 돈은 잘 안 가지고 오지만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하는 아빠가 좋니?”

딸아이는 두 극단을 잘 조화하는 사람이 좋다면서 즉답을 피했다. 딸아이의 대답에서 젊은 시절 밖으로 나도느라 집에 소홀했던 나에 대한 불만이 묻어났다.

채식주의자로 유명한 작가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사람이 양심에 따라 착하게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음과 같이 강렬하게 표현했다.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뒷담화도 재밌고 돈도 좋지만, 가끔은 자신의 언행이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지 돌아보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 임송
중앙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펜(Upenn)대학 대학원에서 사회정책학을 공부했다. 1989~2008년 경제기획원, 공정거래위원회,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부이사관으로 퇴직 후 일용직 목수를 거쳐 2010년 지리산(전북 남원시 아영면 갈계리)으로 귀농해 농사를 짓다가 최근 동네에 농산물 가공회사 '웰빙팜'을 설립했다.

jirisanproduce@daum.net



 

 

 

 
전정희 기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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