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도현은 JTBC ‘나쁜엄마’ 현장에서 “이상하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모자지간으로 호흡한 선배 배우 라미란만 보면 저도 모르게 이상하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곤 했다. 쉬는 시간에는 평상시와 똑같다가도 촬영만 시작하면 돌변하는 모습이 신기했단다. 현장은 그에게 이상향을 발견하는 보고였다. “선배님처럼 연기하고 싶어서 따라하곤 했어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게 되더라고요, 저도.” 지난 13일 서울 역삼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도현은 “‘나쁜엄마’로 인생 가치관부터 연기 방향성까지 모든 게 바뀌었다”고 돌아봤다.
이도현이 극 중 맡은 배역은 최강호다. 냉혈한 검사에서 사고를 겪고 7세 지능으로 돌아가는 인물이다. 한 캐릭터여도 두 가지 연기를 준비해야 했던 셈이다. 쉬운 순간은 없었다. “연출자와 선배 배우들에게 오롯이 기댔다”고 짚던 그는 준비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야기 구성을 나누는 게 시작이었다. 엄마 영순(라미란)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자 미주(안은진)를 좋아해도 이를 티 내지 않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미주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 대학생 시기와 아버지 죽음에 얽힌 비밀을 안 뒤 검사 일에 매달리는 30대에 이르기까지, 그는 매 시기를 각기 다른 배역을 준비하듯 임했다. 37세와 7세를 각각 연기해야 했던 만큼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고민을 거쳤다.
그는 모든 과정을 “새로운 도전”이라고 함축했다. 도전에 기꺼이 뛰어든 이유는 간단했다. “어려움을 맞닥뜨리면 늘 오기가 생겨서”다. “이도현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말이 듣고 싶었거든요. 괜한 자존심 같나요? 하하.” 치솟은 의욕은 그를 단숨에 ‘나쁜엄마’의 세계로 이끌었다. 이도현은 “언제나 난이도 별 다섯 개짜리 배역을 해왔다”면서 “쉬운 역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역할을 해내기까지 속도가 다를 뿐 어려움은 언제나 같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번 역할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그는 촬영 기간 동안 라미란에게 자신을 다독이고 칭찬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늘 스스로에게 60~70점대를 주던 만족도가 ‘나쁜엄마’에서 100점으로 뛰어오른 이유다. 그는 멋쩍게 웃으면서도 “이제 날 대체불가라고 말하기로 했다”고 힘줘 말했다.
‘나쁜엄마’는 그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작품이다. 라미란은 틈틈이 그에게 배우로서 걸어가야 할 방향과 태도 등을 조언했다고 한다. 그는 라미란의 연기를 지켜보며 캐릭터에게서 금세 빠져나오는 법을 익혔다. 이도현은 “매번 과도하게 몰입해 고생이 많았다”면서 “이제는 인물과 나 자신을 분리할 줄 안다”며 미소 지었다. 전작인 넷플릭스 ‘더 글로리’에서 겪은 슬럼프로도 깨달음을 얻었다. 주여정을 애매하게 연기했다는 생각에 속상해하던 그에게 힘을 준 건 라미란의 격려다. ‘물에 넘칠 듯 넘치지 않는 연기가 가장 어렵다. 네가 해낸 연기가 그렇다’는 라미란의 말에 이도현은 다시 나아갈 용기를 얻었다. 그가 ‘나쁜엄마’를 각별하게 기억하는 이유다.
‘배역에 녹아드는 배우.’ 이도현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는 냉철한 판단력이 도드라지는 리더(넷플릭스 ‘스위트홈’ 이은혁)이다가 시대에 바스러진 젊은 청춘을 대변하고(KBS2 ‘오월의 청춘’), 누군가의 첫사랑(tvN ‘호텔 델루나’ 고청명)이다가도 인생 2회차를 살아가는 소년(JTBC ‘18어게인’ 고우영)이었다. 작품마다 인상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 그에게 부담감에 관해 묻자 “늘 내려가는 마음으로 임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산을 오르다 정상을 찍으면 잘 내려와야 하잖아요. 그래야 다음 산을 잘 오를 수 있으니까요.” 그가 바라는 건 명료하다. 연기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다. 그는 자신을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한 일화를 전했다.
“‘호텔 델루나’에서 원래 연우 역을 맡을 예정이었어요. 하지만 사정이 생겨 감독님이 한밤중에 전화로 고청명 역을 할 수 있겠냐고 하더라고요. 그때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역할을 주시는 건 감독님 선택이고, 저는 무슨 역할이든 최선을 다할 자신이 있으니 저를 캐스팅해달라’고요. 지금도 이런 마음으로 연기하고 있어요. 누가 저보다 열심히 한다고 하면 그 사람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하는 성격이거든요. 타고난 천재가 아니니까 더 노력해야죠.”
이도현은 ‘더 글로리’로 제3자 입장에서 스스로를 바라보는 법을 익혔다. ‘나쁜엄마’로는 새로운 가지를 뻗어나가게 할 자양분을 쌓았다. 이제는 또 다른 변화를 앞뒀다. 이도현은 올 하반기 입대를 예정한 상태다. “군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고 말을 잇던 그는 “모든 게 앞으로의 연기 발판이 되리라 믿는다”고 눈을 반짝였다. “전문직 캐릭터와 액션 장르에 도전”하는 건 바람이다. 그는 “군대에 다녀오면 소년 이미지 대신 남성미가 짙어질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연기를 잘하기 위해 부수적인 것들을 갖추려 하다 보면 인생이 행복해지더라고요. 연기 덕분에 자연스럽게 힘을 얻는 거죠. 복무하는 동안 제가 어디까지 변화할 수 있을지를 시험해볼 거예요. 체중 증량부터 감량까지 온갖 것들을 해낼 거예요. 그래야 언제든 저를 역할에 맞춰 수월하게 바꿀 수 있으니까요. 쓰임새 많은 배우가 되고 싶거든요. 제가 경험하는 모든 시간을 자양분으로 만들 거예요. 제대 후에는 새로운 이도현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