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지 않아도 괜찮아 [친절한 쿡기자]

어른이지 않아도 괜찮아 [친절한 쿡기자]

기사승인 2023-06-28 06:00:05
인생 첫 사원증을 받고 찍은 사진.   사진= 이예솔 기자

그날 밤 이불은 아팠을 겁니다. 애써 웃어넘긴 그날의 아찔한 실수가 기억났습니다. 팀장과의 첫 점심 식사에서 소금을 ‘촥’ 뿌려 버렸습니다. 소금 알갱이는 아름답게도 날아갔습니다. 그날 일이 자꾸만 느린 속도로 반복 재생됐습니다.

입사한 지 2달. 매일 터무니없는 실수를 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루에 20번 넘게 한 적도 있습니다. 팀장이 호출하면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손에 땀이 납니다. 이건 그동안 상상해 온 직장인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만난 어른들은 당당한 모습이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평온했습니다. 직장인이 되면 당연히 어른이 되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습니다. 어른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또래 청년들의 이야기도 궁금했습니다. ‘요즘 청년들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른인가요”’ 기사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의외였습니다. 취재를 하며 만난 20명의 청년 대부분 스스로 어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겉모습은 모두 어른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질문에 답하는 청년들은 어린아이처럼 보였습니다. 어릴 적 좋아하던 음식을 떠올리며 웃음 짓고, 부모님과 살던 때를 떠올리며 그리워했습니다. 그들이 어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아직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했거나, 어른이 되는 과정을 두려워하고, 동심에 머물고 싶어 했습니다. 어쩌다 어른이 됐지만, 아직 ‘어른’의 무게가 버거워 보였습니다. 라면밖에 끓일 줄 모르는데, 주방에서 갈비찜을 해 오라는 주문을 받은 것처럼 말이죠. 청년들은 주방을 태워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며 갈비찜 레시피를 찾는 듯했습니다. 

자신이 모험가라는 청년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어른이 되지 않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당연히 모두 어른이 되고 싶을 거란 생각을 반성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른스럽다’는 말이 누군가에겐 칭찬이 아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딱딱한 심장과 공허한 눈빛을 가진 어른이 되는 것보다, 순수한 동심을 갖고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꼭 어른이 돼야 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꼭 어른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에 닿았습니다. 앞으로도 잘해야 한다는, 남들처럼 해야 한다는 부담이 우릴 억누를 겁니다. 스트레스에 속이 뒤틀릴 때도, 큰 실수를 할 때도 있겠죠. 아마 현재가 아프고 미래가 두려운 건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요. 그래도 우린 계속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갈 거고요. 지금 모습이 어릴 적 꿈꿨던 어른의 모습이 아닐지라도요.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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