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모(24‧여‧직장인)씨는 한 번 휴대전화를 잡으면 놓기 어렵다. 하루 중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시간은 9시간51분. 퇴근 후 휴대전화를 잠깐 봤을 뿐인데 2~3시간이 지나있다. 회사일이 바빠져 조금 줄은 게 이 정도다. 주로 SNS와 유튜브를 많이 보는 유씨는 휴대전화에 몰입하다가 가끔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낀다. 머리로는 휴대전화를 그만하고 싶다 생각하지만, 손은 계속 새 영상과 게시글을 찾고 있다.
똑같은 일상을 따분해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는 당신. 도파민 중독을 의심해볼 만하다. 도파민(Dopamine)은 중추신경계 신경전달물질을 의미한다. 현대사회에서 도파민은 ‘패스트푸드’ 같은 존재다. 적당히 자극하면 즐겁지만, 즉각적인 자극이 심하면 몸에 해롭다. 도파민 중독은 멀리 있지 않다. 새로운 게시글을 찾기 위해 화면을 내리고, 숏폼 영상을 연달아 시청하는 것처럼, 우리 주변 일상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쁜 도파민으로는 마약, 술, 도박, SNS 등이 있다.당신의 혈중 도파민 농도는?
도파민 중독이 최근 청년들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일상에서 ‘도파민 중독’이란 표현을 자주 쓰며 도파민에 빠진 걸 인지하고 즐기는 분위기다. 28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책 ‘도파민네이션’이 지난달 베스트셀러 22위, 6월 셋째 주 14위에 올랐다. 인간이 중독에 빠지는 이유를 도파민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이 책은 지난해 3월 출간된 이후 꾸준히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 도파민에 대한 관심은 온라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도파민’을 검색하면 5000개 이상의 게시글이 나온다. 최근 인터랙티브 웹 플랫폼 메타브에서 출시한 ‘도파민 중독 테스트’가 SNS를 중심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청년들은 “별다른 이유가 없어도 휴대전화를 보거나, 콘텐츠를 계속 찾고 있다”라고 입 모았다. 박모(27‧여‧취업준비생)씨 하루 10시간가량 휴대전화를 한다며 스스로를 도파민 중독자라고 정의했다. 박씨는 “자는 시간까지 줄이면서 휴대전화를 한다”라며 “왜 찾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재밌는 콘텐츠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도파민 중독 테스트에서 ‘1000000%’가 나왔다는 유모(31‧여‧직장인)씨는 스스로를 ‘재밌는 일 수집가’라고 표현했다. 유씨는 “친구들을 만나면 재미있는 일이 있는지 매번 물어본다”라며 “재밌는 얘기를 수집하고 혼자 생각하며 웃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또 “재미가 없으면 일상이 힘들다”라며 “재미있는 일을 찾아 SNS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미 도파민에 중독됐지만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모(32‧여‧직장인)씨는 스스로 도파민 중독까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하지만 테스트 결과 도파민 중독으로 나와 당황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SNS와 쇼핑을 즐겨한다는 이씨는 “쇼핑은 그 순간 주는 행복, SNS는 무료한 일상의 자극과 게시물을 올려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자주 한다”고 설명했다.
자꾸 손이 가는 일상 속 도파민
일상에서 도파민을 충전하는 방법 중 가장 대표적인 건 숏폼 콘텐츠다. 숏폼은 1~20분 정도 분량의 짧은 영상 콘텐츠로, 긴 영상을 짧게 요약하거나 잘라내 더 강한 자극을 준다. 이모(26‧여‧직장인)씨는 1시간이 넘는 영화와 드라마 대신, 주로 10분 안팎으로 요약한 유튜브 영상을 본다. 요약본이 없으면 기본 재생속도를 2배로 설정한다. 이씨는 “긴 글이나 영상을 보면 몸이 배배 꼬일 정도로 지루하다”며 “자꾸 짧고 재밌는 것만 찾게 된다”고 설명했다.
모바일 메신저 역시 도파민을 충전하기 좋은 수단이다. 이씨는 일주일 동안 12시간 이상 메신저 대화에 시간을 쏟는다. 이씨는 “아무에게도 연락이 없거나 심심하면, 연락했을 때 재밌을 것 같은 친구를 찾아 연락한다. 오래 전 연락이 끊긴 친구에게 연락을 남길 때도 있다”며 “답장이 생각만큼 재미있지 않으면, 답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덧붙였다.
재미를 위해 일상에서 사소한 내기를 즐기는 경우도 있다. 도파민을 위해 친구들과 내기를 즐겨한다는 김채운(28‧남‧직장인)씨는 “길을 걷던 중 핸드폰을 봤을 때 배터리가 누가 더 남아 있을지, 자기 전 모기를 많이 잡는 사람은 누구인지, 식당 반찬 중 어떤 게 먼저 놓일지 등으로 내기를 한다”라고 설명했다. 이긴 사람이 그날 밥값을 내는 식의 가벼운 내기다.
도파민 디톡스가 필요해
도파민이 주는 쾌감은 공짜가 아니다. 도파민을 충전하는 동시에 피로를 느끼는 청년들이 많다. 이모(26‧여‧직장인)씨는 “자극을 한번 짜릿하다고 느끼면, 빈도와 강도가 점점 세져야 이전만큼의 도파민을 느낀다”라며 “여유로운 일상이나 지루한 순간들을 잠시도 견디지 못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자꾸 집중력이 떨어지고 높아진 미디어 의존도를 끊기 어렵다며 호소하기도 한다. 유씨는 시험 기간 책보다 휴대전화에 자꾸 손이 가서 공부에 어려움을 느낀 기억이 있다.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설정해도 효과가 없어 아예 안 보이는 곳에 숨긴 적도 있다. 유씨는 “휴대전화이 눈에 안 보이니까 집중하는 시간이 조금은 길어졌다. 하지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궁금증을 견디기 힘들었다”라고 호소했다.
일부러 도파민 디톡스를 시도하는 청년들도 있다. 도파민 중독으로 인해 무기력증을 앓던 A씨는 휴대전화를 멀리하는 삶을 선택했다. SNS를 끊고 영상은 시사, 교양, 다큐만 시청한다. 가사 없는 음악만 듣고, 인터넷은 강의만 검색하는 등 나름대로 기준을 세웠다. 첫날엔 휴대전화가 하고 싶어서 손이 벌벌 떨릴 정도였지만, 3~4일이 지나자 집중력이 서서히 올라왔다다. A씨는 “인터넷을 하고 싶은 생각이 점차 사라졌다”라며 “휴대전화를 못 하는 괴로움보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데서 오는 행복이 더 크게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하루 16시간 붙잡고 있던 휴대전화를 최근엔 1시간 이내로 줄인 A씨는 “앞으로도 도파민을 절제하며 살 예정”이라고 밝혔다.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전문가들은 도파민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도파민은 본능적 욕구가 충족되거나 노력해서 성과를 얻었을 때 뇌에서 나오는 물질이다. 문제는 청년들이 나쁜 도파민에 중독는 경우다. 이해국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 겸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청년들은 주로 자극적이고 강력하고 쉽고 빠른 도파민에 빠져있다”며 “청년들이 삶이 힘들어 부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 마약, SNS 등 즉각적인 도파민 중독행위를 통해 갈증을 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일반적인 몰입과 도파민 중독은 제어 능력으로 구별할 수 있다. 이 이사장은 “일반적인 몰입은 본인이 조절할 수 있다”라며 “행위를 조절하지 못할 때 중독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도파민 중독을 사회적 시선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이사장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디지털 미디어를 시작으로 도파민 중독에 접근성이 낮아졌다”라며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알코올, 게임, 마약 등에 대한 정책이 필요하다. 앞으로 도파민 중독 문제가 더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많은 사람들이 당장의 만족만 추구하려 하고, 당장 만족을 얻지 못하면 충동성이 많아진다”라며 “사회 자체가 폭력적이고 위험성이 높아지면, 그만큼 생산성이 줄어들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동기부여와 보상이 중요하다. 이 이사장은 “청년들이 도파민에 중독된 상태에서 벗어나긴 쉽지 않을 것”이라며 “혼자 있는 것 보단 건강한 보상을 주는 모임이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함께 모임을 만들어 도파민 중독을 참는 것에 대해 격려하고, 자제했을 때 쿠폰 적립 같은 사소한 보상을 주면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또 “오히려 이렇게 참는 행위가 건강한 도파민을 분비시킨다”고 덧붙였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