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씨보다 도움을 [안태환 리포트] 

주홍 글씨보다 도움을 [안태환 리포트] 

글‧안태환 의사, 칼럼리스트

기사승인 2023-06-29 16:28:14

현대인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인류에게 있어서는 매우 오래된 일이다. 기원전 4000년부터 알코올과 아편 등의 약물은 인류와 함께 해왔다. 19세기 말까지 유럽 사람들은 의약품으로 아편과 알코올의 혼합물인 아편 팅크를 일상적으로 사용했다. 놀랍게도 중독에 대한 사회적 문제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극심한 식량난과 잦은 전쟁으로 인해 생존은 지난했고 가혹한 삶을 견디기 위해 애써 모른척했던 약물 중독(drug addiction)의 역사였다. 약물에 대한 의존증이 급격하게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것은 사회 양극화의 심화였고 급속도로 전개된 산업화였다. 그렇게 인류와 약물 중독은 공존과 사회적 경계를 반복해왔다.

흔히들 약물 중독은 개인의 나약함에서 시작된다고 쉽사리 규정한다. 약물에 중독된 이들은 다른 이들에 비해 인내하고 절제하는 이성적 선택을 하지 못한다는 확증편향도 갖는다. 그러나 뇌 과학의 시대가 도래한 후 그러한 인식은 뒤집혔다. 중독의 원인으로서 규정되었던 개인 차원의 책임감과 함께 외부환경과 생물학적 측면에서도 중독의 원인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약물로부터 탈출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은 국가적 책임이 되었고 사회적 제도로서 마련돼야 한다는 인식 전환도 이뤄지고 있다.

약물 중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개선되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약물에 대한 의존은 중독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여기는 보편적 인식은 미약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미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약물 규제에는 유색인종을 향한 백인 사회의 뿌리 깊은 혐오가 자리하기에 매우 정치적이기도 하다. 약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혐오감의 근저에는 약물이 범죄라는 통념에서 비롯한 것이지만 그 배경에는 공동체가 함께 풀어 나가야 할 문제라기보다 피부 색이 다른 인종에 대한 오래된 편견과 차별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약물중독의 본질과 해결 방안은 요원해진다.  

전 세계적으로 약물 중독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이다. 중독에 따른 사건사고도 끊이질 않는다. 약물중독은 치료를 위해 사용된 약물에 대해 심리적·신체적 의존성을 보이는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현대인 모두에게 노출되어져 있는 만성 스트레스의 경우에는 코카인과 같은 중독성 약물에 다시 중독되는 정도가 훨씬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학계에서는 중독 초반 약물에 변형된 뇌 시냅스 연결이 만성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다시 자극될 경우 중독을 재발한다고 알려져 있다. 약물중독의 위험은 현대인 모두에게 예외가 아닌 것이다.

마약류뿐이 아니다.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해열제부터 수면제 혹은 다이어트 약 등 무심코 습관처럼 먹는 약물도 어느새 중독이 된다.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약물중독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8만여 명에 달했고 약물중독환자는 한 해 평균 1만 5000여 명 정도로 이제는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보건복지부의 연령별 통계는 40대 약물중독환자가 1만 3330명으로 전 연령층 가운데 가장 많았으며, 50대가 1만 1574명, 30대 1만429명, 20대 9088명 순이었다. 청소년·청년층의 약물중독환자는 최근 들어 매해 15%가량 증가해 80세 이상 19.57%를 제외한 전 연령층에서 가장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약물에 대한 위험수위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매우 우려스럽다.

약물남용 방지는 제도적 문제로 접근해야 옳다. 약물의 오남용을 막기 위한 약품 관련 규제는 물론이려니와 청소년 시기부터 교과과정 속에서 약물의 위험성에 대한 선제적 교육이 실행돼야 한다. 오남용을 조장하는 의료광고도 규제가 필요하고 나아가 의료기관에서의 세심한 환자 처방도 필수적이다. 국민적 자각을 위해 이른바 유명인들을 본보기 삼아 처벌하는 방식도 약물중독에 대한 국민적 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약물에 중독된 이들은 자신의 의지로는 복용을 중단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사회적 안전장치와 치료에 대한 시의성은 여전히 취약하며 정보도 부족하다. 약물에 중독되었을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설과 의료기관은 관련 예산부족으로 여전히 미비하며 그 접근 또한 쉽지 않다. 약물을 사용한 사람에게 자제력이 없는 범죄자라는 주홍 글씨는 약물 중독의 음지를 확장시킨다. 약물 중독에 처한 이들을 사회에서 배척하는 현재의 현실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약물 중독은 처벌만이 능사가 아닌 치료의 영역이다. 약물에 중독된 이들은 도움이 절실하다.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이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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