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7월의 마지막 날 서울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인 이서현(가명) 학생과 그의 멘토 박성연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둘은 지난 5월 처음 만났다. 보다 앞선 지난 2월 글로벌 패션 기업 ‘유니클로’와 사회복지법인 ‘아이들과미래재단’이 ‘경계선 지능 아동’ 지원을 위한 ‘천천히 함께‘ 캠페인이 인연이 됐다.
경계선 지능인은 지능지수(IQ)가 정상과 장애 중간에 있는 사람을 말한다. 통상 IQ가 71에서 84사이면 경계선 지능인이라고 본다. 우리 주변에 경계선 지능인은 이미 많이 있다. IQ 정규분포도에 따르면 이들은 전체 인구의 약 13.6%를 차지한다. 초등학교 한 학급 인원이 30명이라면 3명 정도가 경계선 지능 아동일 수 있는 셈이다.
경계선 지능 아동도 정상 범주에 있는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다 할 수 있다. 다만 속도가 조금 느릴 뿐이다. 하나를 배우려면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야 한다. 경계선 지능인이 ‘느린 학습자’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현이도 일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지만 조금 느린 아이였다.
지난 5월 유니클로는 240명의 느린 학습 아동과 88명의 멘토 선생님을 모집했다. 선생님들은 각각 2~3명의 아이를 배정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의 학교 또는 지역아동센터와 같은 사회복지시설에서 12월까지 총 8개월간 30회차 수업을 진행한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은 벌써 서현이의 11번째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박성연 선생님은 37년간 중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교육자다. 지난 2015년 퇴직을 했다. 퇴직 후에도 교육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 그였다. 이듬해부터 박 선생님은 서울시 교육청에서 운영하는 학습지원센터에서 느린 학습자를 포함한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봉사 교육을 시작했다. 그러다 올해 초 유니클로와 아이들과미래재단이 진행하는 ‘천천히 함께’ 캠페인에 참여하게 됐다.
“담임을 맡을 때면 학기 초에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보고 아이들을 파악했어요. 느린 학습자를 포함한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위해서였죠. 특히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일수록 결석이 잦았는데 이때 저는 직접 집에 찾아가고는 했어요. 그러면서 가정의 안타깝고 열악한 상황을 많이 목격했답니다. 자신의 입장을 하소연할 사람이 없는 아이들의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을 해주고자 노력을 했고 이를 통해 아이들의 얼굴이 달라지고 미소가 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수업은 매주 50분간 진행된다. 과목은 국어, 수학, 정서교육 세 분야다. 아이의 성향에 따라 50분을 한 과목만으로 채울 수도, 세 과목을 섞어서 진행할 수도 있다. 서현이의 수업은 각각 20분, 20분, 10분씩 진행됐다.
이날 서현이가 국어시간에 배운 단어는 ‘늑장’과 ‘스프링’이었다. 서현이는 선생님과 함께 지문을 읽으며 해당 단어의 뜻과 원리를 익혔다. 수학 시간도 막힘이 없었다. 어려운 네 자릿수 뺄셈은 물론 곱셈까지도 척척 풀어내는 서현이였다.
정서교육 시간에는 ‘낙관성’에 대한 이해가 이뤄졌다. 긍정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은 어린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제가 이렇게 똑똑한 줄 몰랐어요.” 시간을 충분히 주고 답을 낼 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은 선생님께 서현이가 한 말이다.
“지난 5월 처음 서현이를 만났을 때에는 정말 무뚝뚝했어요.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다 가리고 있었죠. 어두운 모습이었고 적응 능력 검사에 따르면 학교에 대한 두려움이 컸어요. 지금은 명랑하고 많이 밝아졌어요. 이야기할 때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아직은 어려워하지만 처음보다 대화가 자연스러워지고 편안해졌죠. 무엇보다 지금은 학교가 재미있대요.”
최근 서현이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운동회를 진행했다. 사회성 발달 향상, 아이와 멘토 선생님과의 친밀감 및 신뢰관계 형성이 주된 목적이었다. 운동회 때 이뤄졌던 종목으로는 원형링 통과, 협동 컵 쌓기, 왕제기차기, 홀인원 통과하기, 매직플라잉 컵 쌓기, 신발 던지기 등이 있었다.
“처음에는 운동회에 준비된 종목이 아이들에게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여러 종목을 완수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감명을 받았어요. ‘이 아이들에게 왜 느리다고 하지?’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요. 금방 받아들이고 단합도 잘 되는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었어요.”
박 선생님은 공동체 사회에서 느린 학습자를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빨리 빨리’ 문화에는 장점도 있지만 명확한 한계도 존재하는 만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천천히 갈 필요도 있다는 주장이다.
“대한민국은 근면 성실하고 부지런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속도에 맞춰 걷는 것은 느린 학습자에게 큰 스트레스에요. 천천히 인정해 주고 하나하나 잘하는 것마다 인정해야 아이들이 소생되고 더 발전할 수 있어요. 느린 사람들도 자신이 해내고 이루어 내는 부분을 발췌해서 격려해 주는 사회적 바탕이 세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밖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박성연 멘토 선생님과, 이 모든 수업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서현이 담임선생님은 작은 우산 하나를 나눠썼다. 그리고 둘은 앞서 서현이가 걸어 나간 교정을 같이 걸었다. 과거와 현재의 교육자 연대를 보는 것만 같은 둘의 뒷모습이 묘한 감동을 줬다. 10년 후 성인이 된 서현이에게 박 선생님이 전하는 말은 이랬다. “서현아 ‘천천히 함께’ 가니까 끝까지 도달했지? 너무 수고했어. 정말 멋지다.”
안세진 기자 asj052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