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걱정 없이 마음껏” 배고픈 청춘 위한 3000원 김치찌개 [쿠키청년기자단]

“돈 걱정 없이 마음껏” 배고픈 청춘 위한 3000원 김치찌개 [쿠키청년기자단]

기사승인 2023-08-16 06:05:02
따뜻한 밥상의 김치찌개 한상. 밥과 반찬은 무한 제공이다.   사진=김아현 쿠키청년기자

딸랑. 문이 열리자, 오픈 주방이 보인다. 앞치마를 맨 두 남자가 분주히 움직인다. 넓고 깨끗한 홀에는 13개의 테이블이 있고, 테이블마다 버너가 놓여 있다. 홀 안쪽 한 편에는 셀프바가 있다. 달걀을 구울 수 있는 프라이팬과 버너, 올리브유와 뒤집개가 놓여 있다. 그 옆으로 콩나물무침이 담긴 반찬통과 대용량 밥솥, 그릇, 국자, 수저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오전 11시가 지난 시각, 손님들이 하나둘씩 식당으로 들어왔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이들이 저마다 김치찌개를 주문한다. 넓적한 찌개 냄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김치찌개가 담겨 나온다. 수저가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 그릇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가득한 이곳은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 있는 ‘따뜻한 밥상’이다. 쿠키뉴스 청년기자단은 이곳 따뜻한 밥상에서 지난 6월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일했다.

심성훈, 김선홍 목사가 오픈된 주방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김아현 쿠키청년기자

따뜻한 밥상은 이문수 신부의 ‘청년밥상 문간’에서 운영방식을 전수해 만든 브랜드이다. 주로 목회하는 목사들이 운영한다. 식당을 운영하며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굶주리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든든한 한 끼를 제공하는 것이 이곳 목표다. 김치찌개는 단돈 3000원. 밥과 반찬을 무한으로 제공한다. 라면, 햄, 두부와 같은 사리도 2000원을 넘지 않는다.

따뜻한 밥상 외대점 대표인 심성훈(57·남) 목사와 동역자인 김선홍(46·남) 목사는 매일 오전 9시에 가게에 나와 영업을 준비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쌀을 씻어 불리기다. 30인분의 밥솥에 쌀을 안치고, 1시간 동안 불린다. 밥 짓기는 심 목사가 가장 정성을 들이는 일이다. 취사를 시작해 뜸을 들이고 완성하기까지 50분이 걸린다. 주걱으로 뜨거운 김이 펄펄 나는 하얀 쌀밥을 섞는다. 이렇게 준비한 30인분의 밥은 오전에 동이 난다. 오후에 이 과정을 한 번 더 반복한다.

30인분 밥솥에 가득한 쌀. 밥 짓기는 심성훈 목사가 가장 정성을 들이는 일이다.   사진=김아현 쿠키청년기자

반찬으로 나오는 콩나물무침도 직접 준비한다. 콩나물 3.5kg를 큰 냄비에 삶는다. 삶은 콩나물을 건져내 커다란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수북이 쌓인 콩나물에 갖은양념을 넣고 버무린다.

반찬 준비가 끝나면 육수를 끓인다. 80L 냄비에 양파와 북어 머리, 다시마 등을 넣는다. 주방에서 화력이 가장 센 화구를 사용한다. 30분간 육수를 끓이자 후텁지근한 공기가 주방 안을 가득 메웠다. 김치찌개에 들어갈 돼지고기도 손질한다. 고기 10kg를 손으로 잘게 썬다. 손질이 끝나면 손목이 욱신거릴 정도로 많은 양이다.

봉사에 나선 쿠키뉴스 청년기자가 테이블을 닦고 있다.   사진=김아현 쿠키청년기자

식당은 바쁘게 돌아간다. 손님 주문이 출력된 주문서를 주방에 전달하면 주방장인 심 목사가 조리를 시작한다. 찌개 냄비에 김치와 고기 등 재료를 담고 육수를 부어 팔팔 끓인다. 잘 끓인 김치찌개는 테이블마다 놓인 버너 위에 올라간다.

홀을 담당하는 김 목사도 분주하긴 마찬가지다. 처음 온 손님에게 셀프바 이용법을 안내한다. 버너 작동이 안 된다는 테이블에는 새로운 부탄가스를 가져다준다. 틈틈이 셀프바도 정비한다. 프라이팬을 들고 달걀 프라이를 하고 남은 기름을 닦아낸다. 반찬이 동이 나면 콩나물을 채워 넣는다. 손님이 떠나면 그릇과 수저, 컵을 냄비에 모아 설거지통에 넣는다. 식탁 위에 세정제를 뿌린 뒤 행주로 깨끗하게 닦는다. 버너와 휴지 곽에 튄 김치찌개 얼룩까지 말끔히 지운다.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의 ‘따뜻한 밥상 외대점’에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아현 쿠키청년기자

이곳을 찾는 하루 30~40명의 손님 중 절반 이상은 학생이다. 학생들이 따뜻한 밥상에 오는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가격에 있다. 인근 식당에서는 김치찌개 백반을 8000원~9000원에 판다. 한국외국어대학교를 다니는 김수민(22·남) 씨는 “요즘 이 가격에 식사할 수 있는 곳이 드물다”고 말했다.

벌써 여섯 번째 이곳을 방문한 조건우(22·남)씨는 “돈 걱정 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주로 밖에서 밥을 사 먹는 그에게 배부르게 먹는다는 건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말과 같다. 그러다 보니 한 끼를 배불리 먹으면, 한 끼를 굶어야 했다. 조씨는 따뜻한 밥상을 찾은 후로는 굶는 일이 사라졌다고 했다.

따뜻한 밥상의 메뉴판. 이곳 단일 메뉴인 김치찌개 가격은 3000원이다.   사진=김아현 쿠키청년기자

종교인이 운영하는 곳이어도 3000원이라는 가격에 김치찌개를 판매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인건비라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봉사자들을 받지만, 외대점에는 아직 봉사자가 없어 김 목사와 심 목사 가족들이 나와 일한다. 쌀과 같은 식재료를 후원받아서 쓰기도 한다.

따뜻한 밥상을 찾는 이들도 이런 사정을 알고 있다. 40대로 보이는 한 여성 손님은 자리에 앉자마자 “여기가 목사님들이 운영하는 곳이냐”고 물었다. 김치찌개 1인분을 주문한 뒤 조용히 식사를 마친 그는 만원짜리 지폐를 건넨 후 잔돈을 받지 않고 서둘러 식당을 나섰다. 심 목사는 식당을 후원하는 의미로 돈을 더 내는 손님이 가끔 있다고 말했다.

심 목사는 “나도 학창 시절에 싸고 맛있는 밥을 찾았다. 학생들에게 싼값으로 배불리 밥을 먹일 수 있다는 게 의미 있다”며 “그저 밥을 먹고 싶은 손님이 편하게 식사하고 가는 곳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 먹고 남은 빈 그릇을 본 두 목사가 웃었다.

김아현 쿠키청년기자 ahkim1229@naver.com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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