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기획] ‘밤의 스텔스기’ 솔부엉이를 만나다.

[생태기획] ‘밤의 스텔스기’ 솔부엉이를 만나다.

- 3개월간 동구릉서 ‘야행성 맹금류’ 탐사
- 솔부엉이 외 주요 야행성 맹금류 4종 서식 확인
- 솔부엉이와 소쩍새 왕릉 숲에서 새끼 키워내

기사승인 2023-08-20 06:00:25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와 함께한 쿠키뉴스 생태조사팀은 지난 5월 중순에서 8월 중순까지 3개월간 조선최대 왕릉인 동구릉의 조류 모니터링을 실시했다. 지난 2021년에 이어 2차 생태조사를 통해  10여종의 야행성 맹금류의 번식 및 서식을 확인하는 성과를 올렸다. 쿠키뉴스는 동구릉 외에도 도심 생태계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왕릉의 생태조사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방침이다.

- 조선 최대 왕릉, 조류서식도 수도권 최대
- 참매 등 주·야행성 맹금류 10여 종 번식 및 서식
- 왕릉의 밤은 문명의 소리와 빛으로부터 차단
- 왕릉 주변 개발 가속화로 새들 모여들어
지난 7월 하순 둥지를 벗어난 새끼 3마리가 둥지 인근 나무에 나란히 앉아 있다. 좌측은 어미 솔부엉이. 둥지를 벗어나도 스스로 먹이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부모새가 보살핀다.

빛공해 1위국 대한민국, 그 중에서도 서울과 수도권 도심은 늦은 밤에도 대낮처럼 환하다. 도심에 위치한 왕릉은 그나마 빛과 소리공해에서 벗어나 동식물이 안정되게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곳이다. 구리시에 위치한 조선최대 왕릉 동구릉(東九陵)은 콘크리트 숲 속에서 동식물이 살아가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동구릉은 다른 왕릉에 비해 면적도 넓지만 노송과 굵은 참나무 군락이 적절히 섞여있는 혼효림(混淆林, mixed forest)이어서 맹금류가 새끼를 키우며 살아가기 위한 공간이 충분하다. 왕릉 숲 사이를 끼고 흐르는 아담한 계곡과 숲 속에는 그들의 먹잇감인 작은 포유류와 곤충, 양서 파충류들도 넉넉하다. 또한 곳곳에 통제구역이 많아 이들이 안심하고 새끼를 키우고 쉴만한 장소 역시 넉넉하다.
되지빠귀가 어미가 먹이를 잔뜩 물어다 새끼에게 먹이고 있다. 동구릉에 다양한 새들이 번식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안정적인 생태계를 이루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특히 동구릉 주변은 다산신도시 등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야생 조류의 보금자리가 크게 줄어드는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주변 개발로 인해 전통 숲이 잘 보존된 왕릉으로 새들이 몰려들고 있다. 동구릉에는 야행성 조류 뿐 아니라 참매와 붉은배새매, 긴꼬리딱새(삼광조) 등 멸종위기종을 비롯해 딱따구리류와 큰유리새, 물까치 등 다양한 텃새와 나그네새들이 아름다운 소리로 방문객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큰소쩍새(천연기념물 제324-7호)야행성 맹금류는 무소음 비행으로 먹잇감 곁에 조용히 접근해 날카롭고 강한 발톱으로 먹이감을 낚아챈다.

‘21년도 봄· 여름새 조사에 이어 야행성 맹금류 조사
쿠키뉴스 생태조사팀은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와 함께 지난 5월 중순에서 8월 중순까지 3개월간 동구릉의 여름새에 관해 생태조사를 실시했다. 그 중에서도 야행성 맹금류의 번식과 서식에 관해 집중조사를 했다. 그 결과 솔부엉이 3쌍과 소쩍새 7쌍이 왕릉에서 새끼를 키우고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 지난봄과 겨울에 발견한 수리부엉이와 큰소쩍새까지 합하면 총 4종의 야행성 맹금류가 동구릉에서 살아가거나 거쳐 간 새들이다. 올빼미는 동구릉의 생태 여건 상 서식이 예상되어 추가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다.
' 붉은배새매' 천연기념물 제323-2호 및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그 외에도 주행성(晝行性, diurnal habit) 맹금류로는 참매 한 쌍과 붉은배새매 3쌍의 서식을 확인했고 말똥가리와 황조롱이, 새매 등이 관찰되어 총 10여 종의 주·야행성 맹금류를 확인했다. 우리나라 올빼미과 10종 중 수리부엉이, 올빼미, 솔부엉이, 소쩍새, 큰소쩍새, 칡부엉이, 쇠부엉이  7종은 천연기념물(324호) 및 멸종위기종으로 보호하고 있다. 주행성 맹금류도 대부분 멸종위기 야생동물이다.
소쩍새(천연기념물 제324-6호)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솟쩍'하고 울면 솥에 금이 쩍 갈 정도로 다음해에 흉년이 들고, '솟적다'라고 울면 '솥이 작으니 큰 솥을 준비하라'는 뜻에서 다음해에 풍년이 온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갖고 있는 맹금류(猛禽類)는 조류의 먹이사슬 중에서 최강자로 군림한다. 검독수리와 매, 부엉이, 올빼미 등이 속한다. 맹금류는 쥐, 작은 새, 토끼, 꿩, 곤충 등을 잡아먹는 육식성 조류로 소리 없이 비행해 발톱의 강한 악력으로 먹이를 낚아챈다. 솔부엉이, 소쩍새 등 야행성 맹금류들은 특히 청각이 발달하고 비행 시 발생하는 날개소음을 최소한으로 줄여 스텔스전투기와 같이 조용히 먹이에 접근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참매(천연기념물 제323-1호)

쿠키뉴스 생태조사팀은 지난 2021년에도 4개월(4월~7월) 간 동구릉 내 조류 서식 현황 및 번식지 조사를 통해 천연기념물 6종과 멸종위기종 2급 5종, 번식 확인 종 33종, 둥지 확인 종 20종, 번식지 미확인 종 등 총 67종의 서식과 번식 상태를 확인해 발표한바 있다.
'수리부엉이' (천연기념물 제324-2호)
올빼미과 수리부엉이속의 새로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부터 러시아 남부, 중앙아시아, 그리고 유럽 전 지역에서 서식하는 대형 맹금류이다.

동구릉은 왕가의 무덤 한 개가 늘어날 때마다 이름이 바뀌며 동오릉(東五陵), 동칠릉(東七陵)으로 불려오다가 효명세자가 안치된 이후로 더 이상 이곳에 새로 생기는 능이 없는 채로 조선왕조가 문을 닫으면서 동구릉으로 이름이 굳었다.  
동구릉 측의 협조를 받아 5월 중순부터 본격적으로 조사에 들어갔다. ​주로 동구릉의 휴관일인 월요일에 집중적으로 조사를 했다. 일상에 쫓기듯 생활하다 찾은 왕의 숲은 담장하나를 사이에 두고 속세의 소음에서 벗어나​ 새들의​ 지저귐으로 가득했다. 주간에 관찰한 새들은 2년 전 조사 시와 특별한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
동구릉 숲 속에서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 서정화 대표와  연혜주 조사대원이 새소리를 녹음하고 있다.

조사팀은 능안이 워낙 조용한데다가 월요일에는 어쩌다 마주치는 직원들 외에는 사람들이 없어서 새소리도 틈틈이 녹음했다. 주간의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과는 달리 밤이 되자 능안 여기저기서 소쩍새 소리가 많이 들렸다. 10년 넘게 동구릉에서 생태프로그램을 진행해온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 서정화(60·이하 서 대표) 대표는 “소쩍새가 이렇게 많이 우는 건 처음이다. 역시 숲이 울창하고 서식여건이 좋아 야행성 맹금류가 많이 깃든 거 같다”고 말했다.
동구릉 초입 매표소 인근 숲에서 솔부엉이가 비행하고 있다.
야행성 맹금류들은 양쪽 귀의 위치를 달리해 소리의 방향과 높이를 정확히 판단해 눈으로 보이지 않는 물체도 사냥이 가능하다. 뛰어난 기억력에다가 수직상승과 수직하강까지 가능하고 엄청난 양력으로 적은 날개짓으로 소리없는 비행이 가능해 ‘밤의 스텔스 전투기’로 통한다.

왕릉 숲길에서 솔부엉이를 만나다.
주야간 생태조사를 시작하고 약 보름이 지난 6월 2일 동구릉 매표소에서 인근의 숲 속에서 천연기념물 솔부엉이가 날아가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조사팀은 재빠르게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숨을 죽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솔부엉이는 주변의 눈치를 살피더니 숲길 노송의 중간 쯤 뚫려있는 나무 구멍(수동·樹洞)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솔부엉이 어미가 구멍을 빠져나간 후 살펴보았더니 하얀 알이 세 개가 눈에 들어왔다. 솔부엉이 산란터다.

서 대표는 “알을 낳은 지 얼마 안 된 것 같고 부화해서 이소(離巢)까지 하려면 한 달은 넘게 걸릴 것 같다. 조심스럽게 지켜보자”고 했다. 이후 조사팀은 솔부엉이가 새끼들을 키우는데 방해가 안 되도록 최소한의 기록만 남기면서 조사를 이어갔다.
둥지에 들어가기 전 날카로운 눈으로 솔부엉이가 주변을 살피고 있다. 낮에 활동하는 대신 밤을 택한 올빼미들은 인간보다 2,5배나 밝게 사물을 볼 수 있고 청각은 인간보다 10배 이상 잘 듣는다.

솔부엉이(천연기념물 제324-3호)는 올빼미목 올빼미과에 속한 야행성 맹금류이다. 주로 자연적으로 생긴 나무 구멍이나 딱따구리가 뚫어 놓은 구멍을 사용하며 한 배에 3마리의 새끼를 키운다. 포란기는 28일이며 육추는 4주이다. 대부분의 최상위 포식자 맹금류처럼 단독으로 생활하나, 작은 무리를 이루기도 한다. 먹이는 다른 맹금류처럼 쥐나 새를 먹이로 하지만 박쥐와 곤충도 사냥한다.

3개의 알이 모두 부화하고 본격적으로 먹이활동을 시작하자 솔부엉이 부모는 수컷, 암컷 할 것 없이 정신없이 먹이를 물어다 날랐다. 어떨 때는 동시에 암·수컷이 먹이를 물고와 한 마리는 둥지 밖에서 기다리는 풍경도 목격되었다. 그래도 새끼들은 연신 배가 고픈지 둥지 안에서 먹이를 달라며 보채는 소리가 들린다. 부모 새가 물어다주는 먹이가 부족하면 먼저 태어난 새끼가 동생을 잡아먹는 경우도 있다.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세계다.
둥지를 벗어나 솔부엉이 새끼가 주변 나무에 앉아 있다.

하지만 동구릉에서 관찰한 솔부엉이 새끼들은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인지 장마가 잠시 주춤했던 지난 7월 23일 저녁, 차례대로 3마리 모두 둥지를 벗어나 인근의 나뭇가지에 안착했다. 새끼들은 둥지를 벗어나서도 한동안은 부모새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먹으며 성장하다 자신의 영역을 찾아 독립했다.
큰소쩍새(천연기념물 제324-7호)
야행성 맹금류는 인간보다 뛰어난 야간시력을 가지고 있다. 조류 특성상 망막의 반사판 부분이 없어서 눈이 빛나지 않는 극소수의 야행성 동물이다. 발달된 시각과 청각, 발의 힘과는 달리 후각과 미각은 약한 편이다.

이번 생태조사에 참여한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 연혜주(51) 씨는 “평소 야생조류에 관심이 많아 새들을 관찰하고 조사하는 작업에 참여했다.”면서 “특히 야행성 맹금류는 보기 힘든데 생각보다 왕릉에서 소쩍새와 솔부엉이 등 귀한 새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생태를 지켜 볼 수 있어서 보람이 컸다.”고 말했다.
'알에서 갓 부화한 소쩍새 새끼'
동구릉 구명훈(48) 야간안전관리원은 “동구릉에서 초저녁에서 아침까지 근무하다보면 시시각각 다양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느새 일 년 가까이 근무하다보니 새들도 알아보고 제가 순찰을 돌때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노래를 불러준다”면서 “특히 한밤 중에는 소쩍새 소리가 많이 들린다. 모든 새들이 안전한 이곳에서 새끼들도 많이 나서 잘 키우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이번 조사를 통해 도심의 숲 속에서 무려 10여 쌍의 야행성 맹금류가 번식하고 있는 건 대단한 일이다. 그만큼 도심에서 왕릉 숲이 건강한 생태계 유지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특히 동구릉은 오래된 수목이 잘 보존되어 있고 빛이나 소음, 사람들을 피해 야행성 맹금류가 새끼들을 키우고 살아가기에 좋은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빼미(천연기념물 324-1호)
야행성 맹금류는 턱 근육이 발달하지 않아 무는 힘은 약하다. 동물의 살코기를 찢어 먹을 때는 갈고리 같은 부리로 먹이를 잡아 목의 힘으로 끌어당겨 뜯어먹는다.

'솔부엉이 알'
솔부엉이는 한 배에 3마리의 새끼를 키운다. 포란기는 28일이며 육추는 4주이다.

솔부엉이 어미가 곤충을 물어오는 모습을 새끼가 지켜보고 있다.

솔부엉이 새끼들

동구릉 초입의 재실 장식기와 위에 노랑할미새가 비를 맞고 서 있다.


재실 장식기와 위에서 휴식을 취하는 '딱새'
동구릉(東九陵)은 ‘한양 동(東)쪽에 있는 아홉(九) 기의 왕릉’이라는 뜻으로, 조선을 건국한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를 비롯해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조선 최대의 왕릉군이자 세계문화유산이다.

동구릉 초입의 재실 용마루 위에 노랑할미새가 먹이를 물고 있다.

청둥오리가 동구릉 내 연지를 날고 있다.

'긴꼬리딱새'


교미 중인 호랑나비

큰유리새
되지빠귀
동구릉을 산책하다보면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야생조류 중 하나이다.


청둥오리 가족


물총새


중대백로 새끼들

쿠키뉴스와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 생태조사팀이 동구릉에서 조류를 탐사하고 있다.
야생조류교육센터 그린새 서정화 대표는 “동구릉은 60만평의 넓은 면적에 잘 보존된 숲과 연지(蓮池), 깨끗한 물이 흐르는 실개천 등 조류들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다. 맹금류부터 작은 곤충까지 먹이사슬 구조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있다.”면서 “멸종 위기종을 비롯해 다양한 텃새와 철새, 나그네새들의 보금자리를 역할을 감당하기에 충분하다”고 밝혔다.

조선후기 제18대 현종과 비 명성왕후가 잠들어 있는 '숭릉' 
전통 숲이 잘 보존된 동구릉을 비롯해 왕릉은 조류를 비롯해 동식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생태보고(生態寶庫)이다.

'동구릉 전경'
왕릉 숲은 500년 조선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장소 일 뿐더러 동식물이 새 생명을 잉태하고 키워나가는 도심의 중요한 생태공간이다.

구리=글 곽경근 대기자 kkkwak7@kukinews.com/ 사진=곽경근· 서정화

곽경근 기자
kkkwak7@kukinews.com
곽경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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