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원서 진맥 대신 의료기기 사용… CT·MRI까지 확대될까

한의원서 진맥 대신 의료기기 사용… CT·MRI까지 확대될까

대법원, 한의사 초음파·의료기기 사용 ‘합법’ 결정
한의협 “CT·MRI도 한의학적 진단 보조수단으로 활용돼야”
오진 우려도… 의협 “효과성 검증 안돼”

기사승인 2023-08-22 06:00:02
이필수 대한의사협회 회장(가운데)이 지난달 31일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관련 파기 환송심에 앞서 의사 1만200명의 서명이 담긴 탄원서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대한의사협회

한의사들이 진맥을 짚는 것에 더해 초음파나 뇌파계 의료기기를 사용해 진료를 할 수 있게 됐다. 한의사가 초음파·뇌파계를 진료에 활용하는 것이 불법 의료행위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다.

한의사들은 한발 더 나아가 X-RAY,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등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사실상 무면허 의료행위’라며 반발하고 있어 직역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뇌파계를 사용해 보건복지부로부터 한의사면허 자격정지처분을 받은 한의사 A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복지부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뇌파계는 대뇌 피질에서 발생하는 전압파(뇌파)를 검출해 증폭·기록하는 의료기기다. 뇌종양, 간질 등 뇌와 관련된 질환을 진단하거나 뇌를 연구하는 데 사용된다. 

대법원이 지난해 12월 한의사의 초음파 기기 사용을 의료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데 이어 또다시 한의사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에 한의사도 법적 다툼의 여지없이 초음파, 뇌파계로 진단할 수 있게 됐다. 

한의협은 이에 더해 초음파, 뇌파계를 비롯해 사용 가능한 현대 의료기기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권선우 대한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21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판결로 의료기기 사용이 확대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판단한다”며 “X-RAY나 CT, MRI도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활용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행법에선 한의사가 CT나 X-RAY를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안전관리책임자만 방사선을 방출하는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데 의사, 치과의사, 방사선사만 관리책임자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일부 한방병원에선 의사를 고용해 CT나 MRI 기기를 운용하고 있다. 

다만 한의사도 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이 발의돼 확대 가능성은 열려있다. 해당 개정안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관리·운용 자격을 명시하지 않고 복지부령으로 위임하고 있다 보니 ‘의료인’이라면 CT나 X-RAY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개정안은 의료인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한의사의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국민 여론도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지 않은 분위기다. 서영성 의원이 지난 2020년 발표한 ‘의료행위 관련 국민 인식 여론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한의사의 X-RAY를 이용한 진료행위에 대해 응답자의 53.2%가 적법하다고 봤다. 비적법하다는 응답은 35.6%, ‘잘 모름’은 11.2%로 나타났다. 

한의사의 영상 진단 분야 전문성을 위한 교육도 이미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대한의사협회 한방대책특별위원회가 최근 5년간 한의사 국시 필기문제를 분석한 결과 진단검사나 영상의학 관련 검사 등 의과의료기기를 인용한 문제가 꾸준히 포함됐다. 2022년엔 296개 문제 중 의과의료기기 포함 문제가 66개(22.3%)를 차지했다. 

권 의무이사는 “한의대 교과과정엔 이미 영상의학에 더해 기본적인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진단학 등이 포함돼 있다”며 “한의사들이 활용하는 사진(진맥을 포함한 한의학적 진단법)에 더해 초음파나 뇌파계 등 의료기기를 활용하면 진단의 정확도가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효과성이나 안전성 검증 등 넘어야 할 산은 크다. 김이연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진단을 하면 뭐하나. 한방은 치료 효과성이 거의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단을 한다고 해도 치료까지 할 수 없다”며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으로 인해 오진, 오치료와 관련된 의료 소송 시장이 엄청나게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복지부는 대법원 판단을 기반으로 내부 논의를 하고 직역 단체와 협의할 계획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양 단체 간 갈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