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시계추가 해방 직후로 돌아간 것 같다. 아니 그때보다 더 심각”
육군사관학교 영내 독립군·광복군 흉상 철거 추진 논란이 때아닌 이념 논쟁으로 번질 기세다.
하나의 ‘해프닝’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간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 기념식에서 보여준 ‘우편향’ 발언 영향으로 여러 해석이 오가면서 향후 진영 간 이념 대결이 불가피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국민 통합과 국익 모두에서 득이 될 게 없다는 평가인데 대통령의 생각은 달라질 기미가 없다는 게 문제다.
논란은 지난 25일 열린 국회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시작됐다. 육군사관학교 내 설치된 독립군·광복군 5인의 흉상을 철거한다는 소식에 김병주 민주당 의원이 문제 제기했고, 이는 지난 주말 사이 논란이 확산됐다.
홍범도 장군 등 ‘공산당’ 가입 이력이 있는 인사의 흉상을 육사 생도가 교육받는 건물의 중앙 현관에서 기념하는 게 적절치 않다는 논리인데 몰역사 인식적인 행태라는 비판이 나온다.
민주당은 항일 투쟁의 선봉자 격인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이전하려는 것은 윤석열 정부의 편협한 역사 인식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 초 3·1절 경축사를 시작으로 최근 광복절 경축사까지 국가기념일마다 역대 대통령들과 전혀 다른 연설 기조를 보였는데 이번 논란도 맥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몇 차례 국가 기념식 연설에서 과거 정부와 다르게 일본은 협력 파트너로 높게 평가했다. 반면 북한은 협력 대상이 아닌 ‘반국가세력’ 등으로 평하면서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이는 일명 뉴라이트로 불리는 이들의 주장과 같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28일 논평을 통해 “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역대 정부들은 홍범도 장군을 항일 무장투쟁의 상징적 인물로 인정하고 그의 정신을 기렸다”며 “흉상 철거 논란은 윤석열 정부의 이념 과잉을 보여준 단적인 예”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와중에 대통령실은 국방부와 육사가 잘 검토해 결정할 일이라면서 거리를 두고 있다”며 “여론이 불리하면 늘 뒤로 숨는 습성이 독립 영웅의 영전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일단 여론을 살피면서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 대변인은 28일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해당 논란에 대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가 아닌 이전 문제로 알고 있다”며 “저열한 역사 인식이라는 민주당의 주장은 실체를 말하지 않는 민주당식 선동 방식”이라고 짧게 답했다.
전문가들은 육사 흉상 이전 논의 등은 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그간 대통령의 발언과 행보를 봤을 때 연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이념 논쟁은 국익은 물론 여당의 총선 전략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해석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28일 쿠키뉴스에 “최근 윤 대통령을 보면 완전 뉴라이트 인식을 자신의 소신처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에는 측근의 이야기를 듣고 한 행동처럼 보였지만 계속 반복되는 것으로 봐선 거의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뉴라이트 행보도 MB정부 시절 때는 반발이 심하면 물러서고 그랬지만, 남의 눈치 전혀 보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의 스타일이 가미되면서 더욱 완고해지고 있다”면서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조언했다.
역사학자인 이신철 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장(성균관대 겸임교수)도 때 늦은 이념 논쟁은 고루하다면서 마치 광복 직후로 역사의 시계추를 돌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윤 대통령의 3·1절, 광복절 기념사를 보면 일본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 독립운동 조명보다 이념 투쟁에 방점을 찍는 모습”이라며 “아주 극단적인 이념 주의자를 빼고는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국익은 물론 본인에게도 도움이 안 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