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인이 반려견을 데리고 동물병원에 찾아온다. 며칠째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신다는 설명에 수의사는 조용히 노견의 엉덩이에 손을 댄다. 그 순간 마법처럼 개의 시점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의 생각과 마음까지도 느껴진다. 엉덩이에 손만 닿으면 상대의 과거를 볼 수 있는 사이코메트리 능력 덕이다. JTBC ‘힙하게’ 속 수의사 예분(한지민)은 이를 활용해 강력사건의 진범을 찾아내는 등 사건을 하나씩 해결한다. 디즈니+ ‘무빙’은 초능력을 숨기고 평범하게 살아가려는 아이들의 모습을 현실적인 배경에서 다룬다.
최근 콘텐츠가 현실적인 소재와 배경으로 시청자와 거리를 좁히고 있다. ‘힙하게’는 극 초반 독특한 초능력을 얻은 주인공이 반려동물의 마음을 읽거나 친구의 연애 고민을 해결하는 등 소소한 문제들을 다뤄 공감대를 키웠다. 코믹한 분위기와 이입하기 쉬운 이야기가 호응을 얻는 모양새다. 5.3%(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로 시작해 7%대로 오르는 등 상승세다. 동시간대 비지상파 시청률에서도 1위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디즈니+의 구원투수로 올라선 ‘무빙’ 역시 초능력자를 전면에 내세웠으나 현실적인 면을 놓지 않는다. 고등학생 봉석(이정하)과 희수(고윤정), 강훈(김도훈)은 각기 다른 초능력을 가졌지만 여느 또래들과 같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이들이 초능력으로 인해 겪는 일은 극적이다. 하지만 부모자식 사이 갈등이나 학교생활의 어려움, 짝사랑에 빠진 모습 등이 이입할 여지를 마련한다. 지난달 3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출연 배우 류승룡과 차태현은 “가족애를 다룬 만큼 시공간과 나이·문화를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늦가을 극장가를 장악한 공포영화들도 현실에 밀접히 발붙였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타겟’(감독 박희곤)은 우리 일상에 깊숙이 스며든 중고거래를 소재로 살인마와의 직장여성의 스릴러를 그린다. 같은 날 개봉한 옴니버스 공포 영화 ‘신체모음.zip’은 중고거래와 사이비 종교, 학교 폭력 등 현실에 도사리고 있는 사회 문제들을 스크린으로 끌고 왔다. 6일 개봉한 ‘잠’은 신혼부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수면 중 이상행동이라는 장치를 가미, 익숙함과 오싹함을 동시에 자아낸다. 오는 13일 개봉을 앞둔 영화 ‘차박-살인과 낭만의 밤’(감독 형인혁)은 최근 전 세대에 인기인 차박(차를 이용한 야영)을 공포장르로 풀어냈다.
현실성을 가미한 작품은 시청자를 작품 속 세계로 쉽게 인도한다. 올해 초 방영한 tvN ‘일타 스캔들’ 역시 현실에서 접하기 쉬운 사교육을 극의 중심 소재로 삼아 스릴러와 로맨스를 동시에 풀어내 인기였다. 한 방송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극적인 이야기만 내세우면 시청자가 몰입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면서 “콘텐츠 과잉 시대인 만큼 시청자가 극에 쉽게 이입할 수 있어야 경쟁력이 생긴다”고 싶었다. 다른 관계자는 “답답한 현실을 깨부수는 대리만족과 현실성을 부각해 감정을 건드는 공감대 형성이 요즘 작품 트렌드”라면서 “어떤 식으로든 만족감을 주면 입소문과 흥행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