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생애 처음 들어가본 바다” 아토피 환자, 고통 속 꿈 그리다

“27년 생애 처음 들어가본 바다” 아토피 환자, 고통 속 꿈 그리다

17일까지 아토피피부염의 날 기념 팝업 전시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 5인 직접 작가로 참여
“샤워할 때 유리파편 맞는 듯”…매순간 몸부림
잠·밥·집 주제로 미디어아트 등 콘텐츠도 운영
“환자의 삶 알고 인식 바꾸는 기회 되길”

기사승인 2023-09-15 06:00:02
14일 서울 연남동 카페스콘에서 열린 팝업 전시회 전경. 사진=박선혜 기자

‘가렵고 아픈’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의 삶은 어떨까. 언뜻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그들의 내면에는 남들이 알지 못하는 뼈아픈 고통이 숨겨져 있었다. 먹고, 자고, 살아가는 일상이 매분 매초 실은 지옥이었다고 환자들은 입을 모은다. 말로는 차마 다 표현할 수 없던 그들의 삶이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나 사람들을 마주했다.

14일 서울 연남동 카페스콘에서는 아토피피부염의 날을 기념해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 사노피가 주최한 팝업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는 ‘나의 흠:집’을 주제로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 5명이 직접 만든 생성형AI 드로잉 작품들을 공개했다. 일평생 아토피피부염에 시달려야 했던 생활 속 단면을 투영한 작품들은 어두운 내면은 물론 완치를 향한 끝없는 희망을 담았다.

전시회에 작품을 낸 아토피피부염 환자 최정현(27세) 씨는 매일 샤워하면서 느끼는 통증의 공포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는 샤워할 때가 가장 지옥 같은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최 씨는 “샤워할 때 스스로가 너무 싫었다. 소름 끼치는 통증에 자기혐오가 생기기도 했다. 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박선혜 기자

이번 전시회에 작품을 내놓은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 최정현(27세) 씨는 샤워할 때마다 느끼는 통증의 공포를 표현했다. 어둠 속에서 샤워를 하는 남자의 머리 위로 물이 아닌 유리 파편이 떨어지는 상황이 그려졌다. 바로 옆으로 나란히 걸린 그림에서는 바닷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최 씨의 얼굴이 보였다. 

최 씨는 “아토피로 인한 상처에 물이 닿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증이 솟는다. 샤워하는 시간은 곧 절망의 시간이었다”라면서 “내 모습이 싫어서 항상 불을 끄고 샤워를 했던 일상, 또 유리 조각이 떨어져 몸에 박히는 것만 같은 고통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토피를 개선하는 신약을 복용한 뒤 상태가 조금씩 나아졌고, 올해에는 생애 처음으로 바다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27년만의 일이다. 아직도 그 짜릿함을 잊지 못한다”라며 “가슴 속 품고 있는 희망의 끈은 언제가 물이 두렵지 않은 내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그리게 한다”고 밝혔다.

아토피피부염 환자 정원희(37세) 씨는 아무 일도 없는 듯 냉정하게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모습과 진물, 가려움, 통증으로 몸부림치는 내면 사이에서 항상 갈등했다고 말했다. 정 씨는 “겉으로만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우리들이 아프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실제로는 매순간 가려움과 통증으로 몸부림치고 싶다. 이런 우리의 상황을 다른 사람들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사진=박선혜 기자

두 얼굴을 가진 여성이 등장한 그림도 시선을 모았다. 진물과 피가 범벅된 얼굴, 또 아무 일 없는 듯 냉정한 표정의 얼굴 모두 아토피피부염 환자 정원희(37세) 씨의 모습이다.   

정 씨는 “이중적인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항상 ‘괜찮아’, ‘힘들지 않아’라고 되뇌는 평소의 내 자신, 그리고 실제로는 근육이나 뼈가 드러날 정도의 고통으로 매순간 몸부림치는 속마음을 드러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정 씨는 미로를 벗어나 하늘로 한껏 날아오르는 한 여성의 모습을 그림에 담아내기도 했다. 정 씨는 “원인과 치료법이 미로처럼 혼란스러운 아토피피부염에서 해방되고 싶다”라며 “해결책이 없는 아토피를 벗어나 아무것도 몸에 닿지 않는 공간에서 둥둥 떠 있고 싶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30년 넘게 원인도 못 찾고 먹고 자는 일상생활의 모든 순간에서 괴로워야만 했다. 효과 없는 약과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 지옥 같은 삶을 보냈다”며 “그림 작업을 하면서 지난 시간을 돌이켜봤다. ‘참 많이 힘들었고 고생했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라고 털어놨다.

이날 전시회에서는 과도한 스테로이드 사용으로 실명한 뒤 사람들과 멀어진 조재헌 작가, 첫 아이를 낳을 때 질환이 유전될까 두려웠던 김혜진 작가, 음악활동을 하면서 가려움과 통증으로 스스로 자꾸 작아져야만 했던 씨클 작가의 이야기도 전해졌다. 사진=박선혜 기자 

이날 팝업 전시회장에서는 드로잉 작품 외에도 ‘밥’과 ‘잠’을 표현한 다양한 콘텐츠가 마련됐다. 밥을 주제로 한 미디어 아트 공간은 아토피피부염 환자와 같이 먹을 수 있는 식단을 공유했다. 잠을 주제로 한 공간에서는 가려움, 진물 등으로 인해 잠 못 드는 환자의 밤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김현정 사노피 면역질환사업부(스페셜티케어 사업부) 상무는 “‘나의 흠:집’이라는 테마는 피부와 내면의 상처들로 흠집이 난 환자, 또 그런 상처가 흠이라고 생각하는 환자를 중의적 의미로 담았다”며 “환자들의 삶을 가깝게 느끼길 바라면서 시각적 콘텐츠를 강조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아토피피부염을 가볍게 생각했던 분들이 환자의 삶을 알고 인식을 바꾸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사노피는 매년 아토피피피부염 인식 개선과 환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팝업 전시회는 5번째 진행하는 행사로, 누구나 관람할 수 있으며 오는 17일까지 이어진다.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의 밤을 그린 미디어아트. 환자들이 직접 겪는 경험을 긁는 소리, 고통으로 신음하는 소리 등 청각적 요소와 피와 진물을 연상시키는 시각적 요소로 표현했다.  

전시회를 둘러보고나면 주는 기념품. 아토피피부염 환자의 ‘흠’(상처)을 형상화한 타투스티커를 준다. 사진=박선혜 기자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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