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 중인 임신중절약, 국내 도입 문 열릴까

표류 중인 임신중절약, 국내 도입 문 열릴까

13일 복지위 국감서 공급 대책 지적 이어져
시민단체 “안전 공급 어려워 필수의약품 지정 필요”
오유경 처장 “입법 상황 따라 사회적 논의 이어갈 것”

기사승인 2023-10-17 06:00:12
16일 포탈사이트 검색을 통해 찾은 미프진 불법 판매 사이트. 판매 사이트 캡처


온라인 불법 유통망을 통해 임신중절약 미페프리스톤(상품명 미프진) 불법 구입이 꾸준히 야기되고 있어 정식 도입이 필요하다는 시민 단체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긴급도입 필수의약품’으로서의 지정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13일 보건복지위 국장감사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를 향해 미프진의 공급 여부를 묻는 의원들의 질의가 이어졌다. 특히 이 날 참고인으로 등장한 이동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사무국장은 미프진의 필수의약품 지정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동근 사무국장은 “세계보건기구(WHO)도 필수의약품으로 유산유도제를 지정하고 각 국가들의 사용을 보장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고, 주요 선진국들을 포함한 95개 국가가 이 약을 허가한 상태”라며 “하지만 한국은 아직까지도 허가를 미루고 있다. 현대약품이 자진철회한 후 1년 가까이 다른 회사들의 허가 신청이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어 “국가필수의약품 정의는 필수적이면서 안전 공급이 도달하기 어려운 약에 대해서 지정을 하도록 국가에 요청하는 것이다. 미프진 같은 유산유도제도 이에 충분히 부합한다고 생각한다”며 “정부가 민간회사가 허가 신청을 하기 전에 미리 긴급도입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하고 비축해서 필요한 경우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제언했다. 

참고인을 섭외했던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낙태죄 헌법 불합치 이후 가장 필요한 후속조치로 유산유도제 미프진 도입이 거론되고 있고 개정안도 제출된 상태다. 국가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해 신속히 미프진을 들여와야 한다고 하는데, 식약처 입장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강은미 정의당 의원도 “유산유도제 공급과 관련해 식약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핑계를 대고 있다. 법안이 마련되지 않더라도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이 있지 않나”라고 꼬집었다.  

이에 오유경 식약처장은 “현재 법률 개정 과정을 지켜보면서 유산유도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지속하겠다”며 간결하게 의견을 전달했다. 

미프진은 지난 2019년 헌법재판소가 임신중단 여성을 처벌하는 ‘형법’ 상 낙태죄 조항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난 후 도입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헌법불합치 결정 4년이 지나도록 헌재가 명시한 기한 내 개선 입법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울러 국내에서 유일하게 미프진 국내 독점판권을 계약한 현대약품도 2021년 7월 식약처에 국내 품목허가를 신청했지만, 지지부진한 검토 과정에 결국 지난해 12월 자진 철회했다.

이에 지난 1월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등 시민단체, 의사 59인 그리고 시민 1600여명은 성명서를 내고 “식약처는 사용한 지 30년 된 의약품에 안전성·유효성 자료 보완을 요구하는 등 허가 절차를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심사를 운영해 왔다. 많은 사람이 약을 이용한 임신 중지를 원하고 있지만 보건당국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방치하고 있다. 식약처는 자진 철회를 핑계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실제로 온라인에서는 블로그, 카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미프진 공동 구매’, ‘미프진 정품 판매’ 글이 지속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제대로 된 복약 지도가 필요한 유산유도제가 무분별하게 판매되고 있는 것이다. 

친구에게 추천받은 사이트를 통해 유산유도제를 구입했다던 박모씨(34세)는 “첫째 출산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둘째를 갖게 됐고, 고민 끝에 유산유도제를 복용하게 됐다”며 “말도 못 할 통증이 2~3일간 지속됐던 것 같다. 병원을 가야하나 두렵다가도 불법 유통된 약을 먹은 걸 들키면 법적으로 문제될까 참고 참았다. 차라리 합법적으로 들어와 체계적으로 관리된다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최모씨(21세)는 최근 지인이 유산유도제를 불법으로 쉽게 구매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최씨는 “지난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지인이 유산유도제를 통해 낙태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당시 보여준 구매 사이트에는 후기도 꽤 많이 남겨져 있었다. 수술로 자신의 낙태가 알려질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런 불법적인 행태가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쓰고 있는 거면, 합법적으로 도입돼 제대로 사용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사는 미프진은 가짜 약도 많아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모른다. 낙태약을 안전하게 복용하기 위해서는 산부인과 의사에 의해 정상임신을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미프진 도입까지는 국내 임상 등 여러 가지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당장 낙태약 불법 판매를 근절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은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현대약품은 정부 입법 상황에 따라 허가를 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약품 관계자는 “허가 재개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와 발맞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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