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지운 ‘너와 나’…감독된 조현철의 위로법 [쿠키인터뷰]

경계 지운 ‘너와 나’…감독된 조현철의 위로법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10-19 06:00:34
영화 ‘너와 나’ 스틸컷. ㈜필름영·그린나래미디어㈜

누구나 살면서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어떤 이는 예술작품을 통해 위안을 얻고, 사람을 만나 다시 나아가거나 사색 끝에 자신만의 답을 찾기도 한다. 배우 조현철에겐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그랬다. 첫 장편영화 ‘너와 나’를 연출하며 이야기가 주는 위로에 오롯이 기댔단다. 지난 1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위로를 전하려던 작품으로 오히려 치유받았다”고 돌아봤다. 

조현철이 연출한 ‘너와 나’는 예쁘게 가꿔진 꽃밭 같다. 희뿌연 화면이 주는 몽환적인 분위기와 더없이 현실적인 소녀들 사이를 들여다보면 이들이 가진 묘한 불안이 드러난다. 일렁이는 감정을 좇자 이내 작품이 던지는 묵직한 화두와 맞닥뜨린다. 그는 여러 죽음을 목도하며 ‘너와 나’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안산 단원고 주변 공원에 걸린 거울을 가져온 것도 이 일환이다. 조현철은 “과거 단원고 학생들의 모습이 맺혀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허락을 얻어 영화에 담았다”고 했다. 그에게 죽음은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아픔이자, 동시에 외면하지 않고 되새기며 돌봐야 할 기억이다. 

“모든 창작자가 그렇듯 저 역시 여러 사건을 겪었어요. 죽음에 얽힌 생각이 깊어지던 때가 있었죠. 큰 숫자로 표현되던 죽음이 특히 그랬어요. 그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름들을 영화로나마 호명하고 싶었어요. 2017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세월호 집회 때 생존자 학생이 한 말이 있어요. ‘친구가 꿈에라도 나와 인사해 주면 좋겠다’고요. 그 말이 마음에 깊이 남았어요. 영화를 보며 누군가의 꿈처럼 느끼길 바랐죠.”

‘너와 나’를 연출한 조현철 감독. ㈜필름영·그린나래미디어㈜

두 여자아이가 달려가는 추상적 이미지에서 출발한 영화는 이들의 우정이 사랑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짚는다. 조현철에게 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영화로 경계를 지우고 싶었어요. 너와 나, 꿈과 현실, 과거·현재·미래,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자와 여자의 사랑… 그사이 놓인 선을 희미하게 만들려 했죠.” 빗금이 사라지자 다른 가치로 포장돼 있던 사랑은 비로소 선명해진다. 조현철은 “잊히는 가치가 된 사랑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계기이길 바랐다”고 했다.

‘너와 나’는 끈덕지게 사랑을 말하지만 동시에 상처들도 보살핀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상실을 극복하진 못할지라도 견디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조현철은 앞으로도 여러 죽음을 이야기할 생각이다. 그는 “잠들기 전 엄마가 읽어주던 동화책 같은 위로”를 전하는 게 꿈이다. 차기 연출작 역시 이와 맞닿았다. 제주 숲을 4·3 사건과 엮어 동화처럼 이야기하는 영화를 준비 중이라던 그는 조용히 영화 지론을 펼쳤다.

“옛날 동화책은 말랑말랑해 보여도 무겁고 무섭거나 혹은 엄청난 사랑을 품고 있어요. 삶을 거짓 없이 보여주는 이런 이야기가 주는 위안이 있잖아요. 주인공이 죽지 않고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보다 ‘이 주인공은 상실을 겪고 떠나지만 그럼에도 괜찮을 거야’라는 게 저한테는 더 매력 있거든요. ‘너와 나’ 역시 그래요. 하은이로 대표되는 많은 분을 위로하려는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돌이켜보면 이 작업으로 위로받은 건 저예요. 제가 느낀 마음을 관객께도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어요.”

‘너와 나’ 스틸컷. ㈜필름영·그린나래미디어㈜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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