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 의료 현실과 거리 먼 북한 주민의 삶

무료 의료 현실과 거리 먼 북한 주민의 삶

[나의 북한 유학 일기] 링거 주사 80달러
한 달 생활비 절반 가까이 지급...칙칙한 병원 조명

기사승인 2023-11-03 10:25:13
북한 내 유학생이 학기 중에 중국으로 잠시라도 돌아가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일이다. 따라서 개강하기 전, 본국에서 미리 필요한 것들을 꼼꼼히 준비해와야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약은 반드시 챙겨야 하는 필수품이다. 평양에서는 건강에 문제가 생길 경우, 병원을 찾기보다는 먼저 상비약으로 자체 치료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병원에 대한 불신과 선입견이 있기에 아프면 친구들과 약을 나누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마지못해 병원을 찾았다.  
평양친선병원에서 주사를 맞는 필자. 사진=육준우 

어느 평화로운 밤, 갑작스레 알레르기 반응으로 온 몸이 간지러워 급하게 친구의 차를 타고 평양친선병원으로 달려갔다. 밤 12시가 넘은 평양의 깊고 고요한 밤은 가로등의 미약한 빛만 길을 밝혔다.

그런 불빛 아래에서 교복과 빨간 넥타이를 착용한 한 소년이 서있었다. 소년은 무슨 생각에 그렇게 혼자 서 있을까? 다시 돌아가려 했지만 그는 이미 사라졌다.

유학생들이 일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받는 평양친선병원에는 이전에도 몇 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밤에 찾아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병원 1층의 조명은 어둡고 희미했다.

당직 의사가 다가와서 상황을 확인한 후 손에 든 종이 봉투에서 세 알의 약을 건넸다. "이건 어떤 약인가요?" 라고 물었더니, 의사는 "먹으면 괜찮아질 겁니다." 라고만 답했다. 아무 정보도 없이 그 약을 복용해야 했지만, 의사의 말처럼 다음날에는 몸이 확실히 나아졌다.

또 한번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기 중에 잠시 중국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이런 경우에는 정당한 이유를 제시하고 지도선생님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병원에 방문하여 알레르기 비염 진단서를 받았고, 그 진단서를 바탕으로 승인을 받아 잠시 중국으로 돌아갔다.
2014년 3월 발급된 '평양친선병원'의 의사 소견서. 사진=육준우

어느 해 장염에 걸려 큰 고통을 겪었다. 가져온 약을 다 먹었으나 여전히 좋아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3일 동안 매일 택시를 타고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북한은 무상의료인 걸로 알고 일전에 알레르기 약도 무료로 받은 바 있다. 한데 링거 주사는 80달러를 지불했다. 당시 한달 생활비가 채 200달러도 안되었으니 생활비의 반 정도를 지출한 셈이다.

특별한 조치 없이 생리식염수와 포도당만 세 번씩 투여해도 나아지지 않아서 다시는 가지 않았다. 평양친선병원은 외국인 전용 병원이라 병실은 예상보다 상태가 좋고 오래된 병원이나 깨끗이 관리되고 있었다. 병실에 TV와 냉장고가 배치되어 있었고 환자가 별로 없어서 간호사와 의사들은 여유롭게 보였다.

대사관촌은 입구에 보안요원이 있어서 북한 주민들이 들어올 수 없었고, 택시도 대사관촌 외부에서만 탈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병원에서 입구까지의 거리가 늘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무상의료의 실상 이면에 현실적으로 병원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면 나의 느낌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건지….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대사관촌 외국인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어느 곳보다 닫혀 있는 세계, 그들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조용한 대사관촌이 열리는 음악처럼 활기차게 느껴졌다.

◇ 육준우(陆俊羽·중국인유학생)
홍익대학교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박사수료. 홍익대학교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석사졸업. 2011~2016년 북한 김형직사범대학교 유학(조선어전공). 지금은 한중문화교류원부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정희 기자
lakajae@kukinews.com
전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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