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비 月200만원, 바우처는 25만원…발달지연 아동 떠넘기는 부처

치료비 月200만원, 바우처는 25만원…발달지연 아동 떠넘기는 부처

보험금 지급기준 강화에 발달지연 아동 가정 ‘날벼락’
지난해 13만명으로 급증…건강보험 급여 적용 안돼
금감원-복지부 국감 끝나자 ‘나몰라라’

기사승인 2023-11-09 06:47:01
사진은 기사 본문과 무관. 사진=임형택 기자
“국정감사가 끝나도 그대로입니다. 간담회를 열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는데 금융감독원과 보건복지부 모두 답이 없네요”

보험사가 발달지연 아동 치료 실손보험금을 제도가 안착될때까지 일단 지급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단락됐다. 발달지연 아동 부모들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 정부에 근본적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금감원과 복지부는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형국이다.

8일 ‘발달지연아동 권리보호 가족연대’(이하 가족연대)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여전히 많은 부모가 놀이치료비를 청구해 보험금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며 “보험사로부터 지급 기준 변동 사항 관련 고지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가족연대는 현대해상으로부터 자녀의 발달지연 치료 실비 부지급 통보를 받은 양육자 200여 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항의 뜻에서 다음달 중 서울 광화문 현대해상 사옥 근방에서 트럭시위를 진행할 계획이다. 

현대해상은 어린이보험 시장 점유율 1위 업체다. 앞서 지난달 26일 이성재 현대해상 대표이사 사장은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발달지연 아동 치료와 관련된 제도가 안착될 때까지, 치료사 이슈와 상관없이 보험금을 우선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강 의원은 이 사장 증인 출석 요청을 철회했다. 현대해상 측은 “국감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 사안이 복잡한 만큼 개선안을 현재 준비 중”이라고 했다.

지난 5월 현대해상이 고객과 의료기관에 민간자격증을 취득한 미술, 음악, 놀이치료사의 발달지연 치료 행위는 실손보험 지급 대상이 아니라고 안내한 게 발단이 됐다. 현대해상은 국가자격증이 아닌 민간자격증을 보유한 치료사의 발달지연 아동 치료는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입장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이후 치료비 청구 및 지급이 큰 폭으로 증가했고, 일부 사무장병원처럼 운영하는 아동발달클리닉이 적발된 것도 한몫했다.
지난달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모습. 사진=임형택 기자

발달지연 아동 13만명 달하는데…건강보험서 빠져 민간보험·바우처 의존

발달지연은 운동이나 인지, 언어 등이 정상 기대치보다 25% 이상 뒤처지는 것을 말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발달지연 진단을 받은 아동은 2018년 7만 4300여 명에서 지난해 13만 7800여 명으로 85% 급증했다. 

발달지연 아동 가정이 민간 보험에 의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발달지연 치료비는 건강보험급여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발달지연 치료는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빠져있다. 정부는 소득 기준에 따라 사회서비스 바우처 형태로 지원 중이다. 발달 지연이 우려되는 만 0~6세 영유아에게 운동, 언어, 인지, 정서, 사회성 발달중재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위소득 180% 이하라는 소득 기준을 충족해야 받을 수 있다. 또 바우처 지원을 받는다 해도 월 최고 25만원에 그쳐 월평균 200만원에 달하는 치료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가족연대 송수림 공동대표는 지난달 12일 국감 참고인으로 나와 “매달 들어가는 치료비가 최소 100만원에서 400만원이다. 맞벌이 부부 월급 3분의 2를 치료비로 사용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유일한 국가지원인 바우처는 맞벌이 부부 소득 기준으로는 신청조차 할 수 없다. 소득 기준에서 제외되지 않아 신청할 수 있다고 해도 기본 대기가 1년에서 2년”이라고 호소했다.

때문에 이번 사태를 보험사와 계약자 간 문제가 아니라 국가 공적 지원체계 미흡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 의원도 “발달지연 아동 문제는 사실 국가가 해결해 주지 못한 자리에 보험사가 들어온 것”이라며 “복지부가 해결하지도 않고 금감원이 해결하지도 않고 문제가 떠 있게 됐다.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감원 “복지부가 가이드라인을”…복지부 “금감원이 관리감독을”

하지만 금감원과 복지부는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모양새다. 국감때와는 다른 태도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국감장에서 “(지급기준 강화 이슈를) 금융위원회 중심으로 잘 지켜보겠다”고 답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 역시 “실손보험 약관을 한번 살펴보고 의료행위 기준상 건강보험으로 안 되는 것이라면 별도로 정부 예산으로 지원할 수 없는지도 한번 검토해 보겠다“고 발언했다.

가족연대 관계자는 “발달지연 치료사 자격증과 관련해 금감원으로부터 ‘복지부가 가이드라인을 먼저 제시해줘야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반면 복지부는 실손보험 보장범위는 개별 약관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보건당국이 일률적 지급기준을 마련하기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발달재활서비스 지원대상을 확대하고 의료지원을 통한 발달장애인 거점병원, 행동발달증진센터 확충 중”이라며 “사안에 따라 의료행위인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금융당국에 관리감독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박양동 대한소아청소년행동발달증진학회 이사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발달지연 아동 치료비를 사회 보험에서 보장하고 있다”이라며 “건강보험 급여 항목에 포함하는 것뿐만 아니라 발달지연 아동에 대한 전반적 치료 인프라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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