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갈게”…습관처럼 ‘죽음’ 얘기하는 10대

“먼저 갈게”…습관처럼 ‘죽음’ 얘기하는 10대

기사승인 2023-11-21 11:00:08
쿠키뉴스 자료사진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A(17)양은 종종 ‘죽고 싶다’는 말을 한다. 학교 숙제를 안 했거나, 하기 싫은 공부를 해야 할 때, 시험을 못 봤을 때와 같은 상황에 그런 말이 나온다. ‘한강 오늘 몇 도래’, ‘나는 이제 이 세상 뜰게’, ‘옥상에서 떨어져야겠다’ 등 표현 방식도 다양하다.

국내 10대 청소년 자살률이 매년 높아지는 가운데,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습관처럼 자살을 언급하거나 우울한 이들끼리 SNS에서 모이는 일이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년 동안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 중인 한국에서 10대 청소년 자살은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 10대 청소년 자살률은 2012년 10만명당 5.1명에서 2021년 7,1명, 지난해 7.2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연령대별 자살률이 전년보다 대부분 연령층에서 감소했지만, 40대·10대는 증가했다. 올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소년은 상반기에만 197명(한국생명존중재단 추산)이다.

최근 일부 청소년들은 일상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다. 김모(11)양은 한 친구에게 ‘중학생 되면 한강 갈 거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친구 사이 문제나 학교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로 죽고 싶다는 말을 하거나, 자해를 한다고 몰래 얘기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라며 “친구들이 하는 말이 장난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라 토로했다.

죽고 싶다는 말이 일상에 스며들어 ‘죽음’에 대해 무뎌지기도 한다. 배모(17)양은 “친구들이 단순히 죽고 싶다는 말부터 구체적인 자살 방법에 대한 말들을 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배양은 “장난처럼 말하다보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웃어넘기게 되는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전문가는 장난 같은 말이어도 장난으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이 죽고 싶다는 말을 실제로 고의적 자해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장난처럼 보여도 갑자기 자살을 할 수 있는 게 청소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말을 하는 청소년들의 심리도 본인의 힘든 부분을 주변 친구, 어른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장난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해볼 필요성이 있다”라고 조언했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죽고 싶어” 속 가려진 외침, “외로워”

고의적 자해를 생각한 청소년들은 그보다 앞서 ‘우울감’을 먼저 경험했다. 보건복지부 ‘2022년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최근 12개월 동안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학생들의 자살생각률은 34.1%로 조사됐다. 이는 우울감 경험이 없지만 자살을 생각한 학생(4%)보다 27.4%p 높았다.

고의적 자해를 고려한 청소년들도 주된 이유로 우울감을 꼽았다. 통계청 ‘2022년 사회적조사 결과’, 10대의 자살 충동 주요 이유로는 질환‧우울감‧장애가 34.2%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성적‧진학 문제 30.8%, 외로움‧고독 11.2%로 뒤를 이었다.

우울함을 호소하는 일부 청소년들은 SNS를 찾는다. X(엑스‧구 트위터)에서는 우울증과 자해하는 계정을 뜻하는 ‘우울계’, ‘자해계’가 존재한다. 일부 우울계는 간단한 자기소개표를 공유하며 취향이 맞는 친구를 찾기도 했다. 우울과 자해뿐 아니라, 본인 병명을 거리낌 없이 공유하는 모습이었다.

우울한 청소년들끼리 모인 단체 채팅방도 있었다. 단체 채팅방을 검색하자, 적게는 10명 이하부터 수백 명이 모인 방까지 다양한 종류의 채팅방 수십 개가 나왔다. 한 채팅방은 낮이 아닌 밤이 되면 활성화됐다. 새벽 1시, ‘우울하다’는 말 한 마디에 조용했던 채팅방은 살아났다. 한 명이 자신의 우울한 마음을 털어놓자, 10명이 각자 우울한 감정을 드러내며 답했다. 

전문가들은 우울한 청소년들이 한 채팅방에 모여 서로 의지하는 건 위험한 행위라고 경고했다. 임명호 교수는 “우울한 감정을 털어놓고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좋지만, 모두 우울한 사람끼리 모여 얘기하는 건 위험하다. 부정 효과가 작용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그는 “특히 청소년기에는 모방심리가 강하기 때문에 우울한 사람들끼리 있으면 더 우울해질 수 있다”라며 “우울함을 이겨낸 사람이나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 긍정적인 사람과 함께 대화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우울의 늪, SNS 부작용

SNS는 무분별한 고의적 자해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고 베르테르 효과로 이어질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베르테르 효과는 연예인 등 유명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일반인들이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감정이 전염되거나 동조돼 우울증이 악화하는 현상이다. 지난 4월 한 여고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가 SNS를 통해 생중계된 뒤 자살률이 늘어나기도 했다. 경찰은 사건 이후 8일간 (4월17~24일) 접수된 하루 평균 자살과 자살 의심, 자해 관련 신고는 같은 달(4월1~16일)에 비해 30.1% 늘었다고 밝혔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10대 청소년의 자살과 우울증 원인으로 SNS를 지목하기도 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5월 미국과 영국 등 17개국 자살률 등을 분석한 결과, 주요 원인으로 스마트폰을 지목했다. 또 미국인 53%가 청소년 우울증 증가 주된 원인으로 SNS를 지목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전했다. 단, 해석을 달리할 여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는 SNS와 OTT 등의 활성화가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진단했다. 황태연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이사장은 “청소년들이 SNS와 OTT, 게임 등 잔인한 장면에 노출되는 것이 자살에 영향을 준다”라며 “상대를 때리는 등 게임 장면을 통해 청소년들이 고통에 무감각해지면 자살, 자해에 대한 감각도 낮아진다”라고 설명했다.

유해 콘텐츠를 빠르게 차단할 필요성도 있다. 황 이사장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미디어 자살 정보 모니터링 자원봉사자를 통해 모니터링하고 있지만,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심의하는 기간이 한 달 소요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유해 콘텐츠를 빠르게 차단하려면 경찰과 공조해 차단할 수 있는 자살 모니터링 센터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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