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나의 벗이여, 영원히 늙지 않으리라(To me, fair friend, the United Kingdom, you never can be old)”
윤석열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열린 국빈 만찬에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정형시) 104번의 한 구절을 인용해 건배사를 제의하자, 참석자들이 일제히 잔을 높이 들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영국 런던 버킹엄궁 볼룸에서 열린 국빈만찬에 참석했다. 국빈 초청을 해준 영국에 대한 예우를 밝히고, 한영 관계의 협력과 번영을 위한 자리였다.
찰스 3세 국왕과 나란히 만찬장에 모습을 드러낸 윤 대통령은 검은색 연미복에 흰색 나비넥타이를 착용했다. 검은색 원피스 차림의 김건희 여사는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카밀라 왕비와 함께 등장했다.
찰스 3세 국왕은 만찬사에서 한국어로 “영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고 말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냈다. 만찬사 도중 영어로 “바람이 자꾸 부는데 내 발이 반석 위에 섰다. 강물이 자꾸 흐르는데 내 발이 언덕 위에 섰다” (While the wind keeps blowing, My feet stand upon a rock. While the river keeps flowing, My feet stand upon a hill)고도 했다. 윤동주 시인의 ‘바람이 불어’의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한국어로 “위하여”를 외치며 건배를 제의하기도 했다.
찰스 3세는 이날 연설에서 한국의 문화적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찰스 3세는 “영국에 대니 보일이 있다면 한국에는 봉준호가 있고, 제임즈 본드에는 오징어 게임이 있으며, 비틀즈의 렛잇비에는 BTS의 다이너마이트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 양국의 문화는 전 세계인의 상상력을 사로잡아 소위 소프트 파워를 초강력 파워로 바꾸는 탁월한 능력을 공히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불행히도 저는 세종대왕의 뒤를 따라 완전히 새로운 알파벳을 만들어 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존경하는 국왕님, 대관식 이후 영국 방문하는 최초의 국빈으로 저희 부부와 대표단을 초청해주시고 이렇게 성대한 만찬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화답했다. 이어 “올해는 우리 두 나라가 외교관계를 수립한 지 140주년이 되는 해”라며 “한국은 1883년 유럽 국가 중에서 영국과 최초로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여 그동안 변치 않는 단단한 우정을 쌓아왔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한국과 영국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를 나눈 혈맹의 동지”라며 “우리가 미래를 위해 함께 하지 못할 일이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950년 우리가 공산 침략을 받아 국운이 백척간두에 섰을 때 약 8만1000여명의 영국 병사들이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머나먼 길을 달려왔다”며 “오늘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헌화하고, 영국 참전용사들과 만나면서 양국의 우정이 피로 맺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새겼다”고 했다.
영국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저는 학창시절 친구들과 함께 비틀즈와 퀸, 그리고 엘튼 존에 열광했다. 지금 해리포터는 수많은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며 “최근에는 한국의 BTS, 블랙핑크가 영국인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고 공통점을 언급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날 만찬 자리엔 양국의 주요 참모진들이 총출동했다. 한국 측에선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했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장,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등 기업인도 참석했다.
K팝 간판 걸그룹 ‘블랙핑크’ 멤버인 로제, 제니, 지수, 리사도 모두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과 찰스 3세 국왕은 양국 관계의 든든한 토대는 양국이 공유하는 보편적 가치라는 데 공감하고, 양국 관계의 발전뿐 아니라 전세계의 자유·평화·번영의 증진을 위해서도 협력을 강화해나가길 희망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조진수·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