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 청년의 휴대폰은 바쁘게 울렸다. 확인과 결정을 요청하는 메시지가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아이돌 가수로 7년간 무대를 누비던 그는 직접 기획사를 차려 대표가 된 참이었다. 젊은 제작자가 된 주인공은 그룹 아스트로 출신 가수 라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노래와 춤에만 쏟은 그는 난생처음 예산안을 쓰고 콘셉트 시안도 짰다. 지난 10일 서울 상암동 한 카페에서 만난 라키는 격무에 시달리는 직장인과 다르지 않았다. “간단한 일 같아도 파고들면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직원이 100명쯤 있으면 좋겠어요.” 청년 대표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라키가 회사를 차린 이유는 간단했다. “무대에 계속 오르고 싶은데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었다”고 했다. 2016년 아스트로 멤버로 데뷔한 그는 지난 2월 전 소속사 판타지오와 계약이 끝난 후 홀로서기를 결심했다. 혼자 힘으로 음반을 내고도 발매할 도리가 없더란다. “헤어·메이크업에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도 몰랐다”는 청년은 시행착오를 거쳐 어엿한 대표가 됐다. 쉬운 일은 없었다. 하루 한 시간 밖에 못 잘 정도로 매일 바빴다. 그는 “재미로 곡을 쓸 수는 없었다. 솔로 가수로서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와 방향성을 정리한 뒤 콘셉트를 정하고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돌아봤다.
이렇게 탄생한 음반이 지난 22일 공개한 ‘라키스트’(ROCKYST)다. 타이틀곡 ‘럭키 라키’( Lucky Rocky)를 만드는 데만 한 달여가 걸렸다. 라키는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보단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장기였던 발레도 내려놨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과 “보여줄 게 많이 남았다”는 자신감으로 내린 결정이다. 음반은 라키가 팬들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같다. ‘너의 취향에 맞춰 변하겠다’는 ‘카멜레온’이나 떠나간 연인에게 자신을 찾아달라고 말하는 ‘날 찾아줘’ 모두 “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랑 노래로 표현했다고 한다.
라키에게 팬들이 유독 애틋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한 신인배우와 열애설에 휩싸였다. 일부 팬들은 그에게 실망을 내비쳤다. 라키는 “팬들과 관계를 다시 잘 다져야 할 때”라며 의지를 다졌다. 12세 때 연습생이 된 그는 한때 아이돌의 삶이 혼란스러웠다. “얼마나 큰 책임과 불안을 견뎌야 하는 일인지 가수가 되고서야 알았다”고 했다. 주변에 조언을 구하고 싶어도 “다들 닥쳐오는 파도를 그대로 맞으며 견디는 것 같아” 망설여졌다고 했다. 이런 그를 다시 일으킨 건 “가수이기에 느낄 수 있었던 힐링(치유)”이었다. 라키는 “수많은 관객이 내게 집중해 에너지를 쏟아 주실 땐, 현실을 초월한 듯한 기분이 든다”고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뮤직 이즈 마이 라이프.”(Music is my life·음악은 내 삶이야) 다시 무대로 돌아온 라키는 음반을 여는 노래에서 이렇게 흥얼댄다. “음악 없이는 내 삶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음악이 내겐 큰 의미”라는 마음으로 쓴 노래다. 데뷔 초 라키는 ‘다시 태어나도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가수라는 직업이 더 좋아졌다”고 했다. 매일 쪽잠을 자고 새로운 과제가 쏟아지듯 가운데서도 그는 내일을 기다린다. 라키는 “내게 숨 쉴 틈이 되어주는 건 내일의 나”라며 “나는 성장하고 발전해야만 한다. 내일 한뼘 더 자랄 민혁이(라키 본명)를 기대하며 숨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