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소상공인 등의 대출 연체기록을 삭제하는 ‘신용 대사면’ 추진에 나섰다. 코로나19로 불가피하게 연체에 빠진 자영업자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는 취지다. 다만 이를 두고 모럴해저드와 함께 책임이 국민 모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코로나19 타격으로 연체에 빠진 자영업자의 연체기록을 삭제하는 방안을 금융권과 협의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 8일 “코로나19 타격으로 대출을 못 갚아 연체한 경우 그 기록을 삭제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며 “금융권과 협의 중으로, 협의만 된다면 설날 이전에도 빠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상 100만원 초과 금액을 3개월 이상 연체하면 이른바 ‘신용불량자’로 분류돼 최장 5년 간 신용평가사(CB) 등에 연체 정보가 보관된다. 연체 정보가 등록되면 대출이나 카드발급이 거부되는 등 금융 거래에 제한을 받는다.
신용 대사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지난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민과 함께 하는 민생토론회’에서 힘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토론회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코로나19 때문에 불가피하게 대출 기한을 지키지 못해 연체를 한 경우 추후 상환을 완료하더라도 연체 기록이 남아 은행대출이 어려워지는 애로가 있다”고 토로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당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이 정상적 경제활동에 조기 복귀할 수 있도록 신속한 신용회복 지원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답했다, 다음날에는 서민금융지원 현장 간담회를 가진 뒤 기자들과 만나 신용사면을 “바로 검토하겠다”고 부연했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이번 신용사면을 두고 신용불량자가된 자영업자들이 정상생활로 복귀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하지만 일방적으로 연체자 이력을 삭제하면 도덕적 해이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어려움에 빠진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지원이 필요하지만 이를 직접적인 채무 탕감이나 연체 기록 삭제 등의 방법으로 지원할 경우 모럴해저드 우려는 물론 다른 자영업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체 이력 삭제로 금융사들의 리스크 관리가 어려워져 대출 손실률이 올라갈 경우 대출금리 상승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리스크 관리가 어려워질 경우 대출 연체율이 올라가고, 이는 금융사의 비용 상승을 불러온다”며 “이는 대출금리에 리스크 관리 비용이 늘어나면서 일반 고객의 대출금리가 상승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삭제 대상을 연체 자영업자 가운데 빚을 상환하는데 노력하는 이들로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질서 유지를 위해 신용회복에 나선 이들 가운데 성실상환자로 연체이력 삭제 대상자를 한정해야 한다”며 “그래야 사회에 빚은 안 갚아도 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