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뒤집은 ‘성난 사람들’, 이렇게 탄생했다

세계 뒤집은 ‘성난 사람들’, 이렇게 탄생했다

기사승인 2024-02-02 12:33:19
‘성난 사람들’ 속 배우 스티븐 연. 넷플릭스

시작은 SUV였다. 미국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에서 각각 8관왕과 4관왕을 차지한 ‘성난 사람들’은 각본·연출·제작을 담당한 이성진 감독의 로드레이지(난폭운전) 경험에서 출발했다. 드라마도 비슷하다. 한국계 미국인 대니(스티븐 연)가 자신에게 난폭운전을 한 중국계 미국인 에이미(앨리 웡)에 복수하며 이야기가 시작한다. 현대인의 분노를 들여다본 작품은 “‘오징어 게임’ 이후 최고의 TV 쇼”(영국 GQ)로 불리며 호평과 인기를 모두 누렸다.

‘성난 사람들’의 두 주역인 이 감독과 배우 스티븐 연을 2일 화상으로 만났다. 이 감독은 “많은 사람들이 작품 속 캐릭터에서 자신의 일부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주인공 대니와 에이미는 모두 이민자로, 삶을 통제하지 못해 무기력하다. 난폭운전으로 악연을 맺은 두 사람은 맺힌 울분을 서로에게 쏟아내다 결국 상대를 깊이 이해한다. “우리 마음속 깊이 감춰진 어둠을 조명하고 싶었어요. 등장인물들은 서로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면서 결국 상대를 이해하게 되는데요. 내 어둠을 남에게서 볼 때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청자에게도 이런 이야기가 마음에 와닿은 것 같아요.”(이성진)

한인 교회에 간 대니가 찬송가를 부르다 오열하는 장면, 부모님을 부양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감정 등 한국적인 요소가 많다. 이 감독과 스티븐 연 모두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떠난 ‘이민 1.5세대’다. 에이미 역의 앨리 웡을 비롯해 조셉 리, 영 마지노 등 아시아계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 감독은 “스티븐과 앨리가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단계부터 많은 영향을 줬다”며 “내 경험뿐만 아니라 작가진 등과 나눈 수많은 이야기가 섞여 거대한 ‘믹싱 팟’을 만들었다. 모두의 경험을 한데 모여 제3의 경험으로 변모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스티븐 연도 “각자 나눈 이야기를 이해하되 특정한 경험을 화면에 담아내려고 하진 않았다”고 거들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참석한 스티븐 연(왼쪽부터), 이성진 감독, 앨리 웡. AP·연합뉴스
‘성난 사람들’을 촬영하는 앨리 웡(왼쪽), 이성진 감독. 넷플릭스

이민자들의 일상을 현실적으로 표현한 데는 넷플릭스에서 근무하는 한국계 직원들의 공도 컸다고 한다. 이 감독은 “가령 한인 교회 장면을 (이민 배경이 없는) 상대에게 이해시키려면 긴 설명이 필요했다.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깊이 이해하며 전폭적으로 지지해줬다”고 고마워했다. 넷플릭스가 매년 발간하는 다양성 보고서를 보면, 미국 넷플릭스 내 아시아계 및 라틴계 임직원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2022년 기준 아시아계 직원은 전체의 27%, 임원은 18.4%로 집계됐다.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에 이어 또 한번 한국계 미국인을 연기한 스티븐 연은 “이민자의 삶은 제가 직접 겪어 잘 안다”고 말했다. 다만 대니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때완 달랐다고 한다. “대니는 우리가 가진 여러 모습의 수치심을 집약한 인물 같아요. 무력하고 통제력 없죠. 그의 모습에 저도 공감했어요. 대개는 무력한 캐릭터를 연기해도 배우마저 통제력을 잃진 않아요. 대니는 그렇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캐릭터에 녹아들어 배우인 저마저 통제력을 잃어야 했어요. ‘이상하게 보이진 않을까’란 두려움도 함께 내려놓았습니다.” (스티븐 연)

두 사람의 상승세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이 감독은 내년 7월 개봉하는 마블 스튜디오 영화 ‘썬더볼트’에 각본가로 참여한다. 스티븐 연은 봉준호 감독의 새 영화 ‘미키 17’에 출연한다. 애초 이 영화는 올해 3월 공개될 예정이었으나 미국 작가조합 파업 여파로 개봉일이 무기한 연기됐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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