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증원 규모 발표가 임박하면서 의료계에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2025학년도 입학 정원 증원 규모로 1500~2000명 사이가 거론되면서 의료계 반발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정부가 ‘집단휴진·총파업’ 카드를 꺼내든 의료계 반발을 넘어 증원을 밀어붙일지 관심이다.
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는 6일 비공개 회의를 통해 의대 증원 규모를 결정한다. 복지부 산하 보정심은 보건의료에 관한 주요 시책을 심의하는 기구다. 정부 위원과 의료계 공급자 대표 외에 환자단체와 소비자, 노동계 등 수요자 대표, 전문가 대표 등 25명으로 구성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6일 보정심을 소집한 게 맞다”면서도 “의대 증원 규모 발표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보정심이 끝난 직후 발표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의료계가 파업을 예고한 상황이라 증원 규모 발표 일정을 확정하기 조심스러운 분위기가 감지된다.
10년 뒤 1만5000명 부족…‘1500명 이상’ 유력
정부가 발표할 의대 증원 규모는 2025학년도 입시에서 1500명 이상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부는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 민생토론회에서 “2035년 1만5000명이 부족한 의사 수급 상황을 고려해 2025학년도부터 의대 입학 정원을 확대하겠다”며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했다.
실제 보정심의 의사 인력 전문위원회에서도 10년 뒤 부족한 의료 인력 숫자로 ‘1만5000명’이 거론됐다. 한 보정심 위원은 5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구체적인 수치로는 2035년에 1만5000명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주로 논의됐다”며 “1만5000명을 당장 달성해야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관한 의견 차이는 서로 간 있을 수 있고 어떻게 정할지는 내일 회의에 가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간 전문위원회에선 의료 인력이 얼마나 부족한지, 이를 충족시키려면 어느 정도 증원해야 하는지, 또 현재 의대들이 정원을 확대할 때 제대로 교육시킬 수 있는 상태가 돼 있는지 등을 두고 논의가 오갔다”고 설명했다.
의대 입학 후 전문의가 될 때까지 10년가량 소요되는 만큼, 2025학년도 입학 규모는 1500명 이상이 유력하다. 의사 양성에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초기에 2000명 이상을 선발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증원 규모를 조절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내년도 입시에서 1500명을 확대한다면, 의대 정원은 현재의 1.5배 수준으로 대폭 늘어난다. 현 의대 정원은 3058명으로, 2006년 이후 19년째 동결된 상태다.
“파업도 불사” 의료계 거센 반발…관건은 전공의 참여
의료계 반발은 넘어야 할 산이다. 의사들이 단체행동에 시동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6일 ‘정부의 일방적 의대 정원 증원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대응 방침을 발표할 방침이다. 5일 저녁 긴급 상임 이사회를 개최해 추가 대응책을 논의했다.
상당수의 의사들은 의대 증원 정책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의협 산하 의료정책연구원이 작년 11월10일부터 일주일간 회원 401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과대학 정원 및 관련 현안에 대한 의사 인식 조사’ 결과, 응답자의 81.7%(3277명)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이유로는 “의사 수가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49.9%로 가장 많았다.
의대 증원 시 단체행동, 총파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는 지난 3일 성명서를 내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필수의료 패키지와 의대 증원을 강행할 경우 전공의들과 함께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전공의들도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지난 2일 임시 대의원 총회를 열고 집단행동 등 대응 방침을 논의했다. 지난달에는 회원 4200명(전체 28%)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6%가 단체행동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전공의가 파업에 참여할 경우 의료 공백은 불가피하다. 정부의 추진 동력이 꺾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했을 당시 전공의의 80%가량이 파업에 참여하며 복지부가 백기를 든 바 있다.
아울러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근거가 잘못됐다며 소송전도 벌이고 있다. 공정한 사회를 바라는 의사들의 모임(공의모)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의 추진 근거로 쓰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의사 부족 추계치가 잘못 계산됐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앞서 보사연은 복지부 연구용역을 받아 ‘전문 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의사 1인당 업무량이 2019년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2035년에는 의사가 2만7000여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에 대해 공의모는 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보사연과 연구진들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보사연의 연구에 다수의 계산 오류가 존재한다”며 “부적절한 연구 결과의 수정 및 철회 등이 이뤄져 해당 연구 결과가 악용되는 상황이 바로 잡아지기를 원한다”고 전했다.
시민단체 ‘2000명 증원’ 압박…정부 의지도 확고
의사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대중과 시민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특히 시민사회에선 더 큰 규모의 의대 증원을 요구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5일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의대 정원을 최소 2000명 이상 확대해야 한다”며 “공공의대 신설 등 획기적 대책 없이는 극심한 필수의료 공백과 지역의료 격차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비교했을 때 의사는 부족하고 의료 이용량은 증가하고 있다”며 “미래 공급량 등을 추산해봤을 때 최소 2000명은 넘어야 하고, 3000명 이상 확대했을 때 부족분을 해소할 수 있다는 추계치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국민들도 의대 증원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높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82.7%가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에 찬성했다. 반대 의견은 14.1%에 그쳤다.
의대 증원에 대한 우호적 여론에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도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의지도 확고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민생토론회에서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의료 개혁이 일부 반대나 저항 때문에 후퇴한다면 국가의 본질적인 역할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도 지난달 31일 브리핑에서 “이번에 실패하면 대한민국은 없을 거라 보고 비장하게 각오하고 있다”고 했다.
파업이 정책 추진의 변수로 꼽히지만, 정부는 강경 대응에 나서기로 방침을 정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1일 “정부는 비상진료대책과 함께 불법 행동(파업)에 대한 단호한 대응 방안을 마련해놓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 파업 돌입 시 즉시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리고 이를 따르지 않을 때는 징계할 계획이다.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가 파업할 경우 정부는 업무개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즉시 병원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3년 이하 징역과 함께 의사면허를 박탈당할 수 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