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교를 안 댕기면 안 댜?” “내는 니 좋아했다고!” “걍 줍서 좀.” “나는 인생 모토가 깔~끔이여.”
K콘텐츠에 사투리 바람이 불고 있다.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던 경상도 사투리에 이어 전라도, 충청도, 제주도 사투리가 친숙함과 새로움을 불어넣는 모습이다.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를 살펴보면 극 중 배경이나 인물 출신지에 따라 다양한 지역 사투리를 차용하고 있다. 지난해 방영한 tvN ‘무인도의 디바’에선 주인공이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 데 이어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소년시대’가 충청남도, 지난달 막 내린 ‘웰컴투 삼달리’는 제주도, ENA ‘모래에도 꽃이 핀다’는 경상남도 사투리를 주류로 내세웠다. 현재 전파를 타고 있는 tvN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주조연 캐릭터가 경상북도 사투리를 사용한다.
잘하면 현실적, 못 하면 몰입 ‘와장창’
이들 작품은 주 무대로 삼은 지역의 현실감을 살리거나 캐릭터들의 과거 인연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사투리를 택한다. 1989년 충남 온양·부여를 배경으로 삼은 ‘소년시대’가 대표적이다. 부산 출신인 임시완과 충남 천안 출신인 이선빈이 주인공을 맡았다. 미디어에서 잘 다루지 않던 충청도 사투리가 가득 나와 신선함을 준 데다, 배우들의 실감 나는 사투리 구사력이 어우러져 입소문을 탔다. 종영 시점에는 시청량이 2914% 상승(쿠팡플레이 통계)할 정도로 인기였다. 임시완은 별도로 사투리를 배우는 건 물론 극 중 배경인 충청도에 며칠간 체류하며 ‘네이티브’(원어민)가 되고자 노력했단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산 출신인 서현우는 디즈니+ ‘킬러들의 쇼핑몰’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차지게 구사해 호평을 얻었다. 그는 최근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사투리를 반복해서 듣는 건 물론, 사투리 자체에 실린 정서를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고 돌아봤다.
잘 쓴 사투리는 흥행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반대의 경우 몰입감을 해치는 요소가 된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대표적이다. 극에서 경상도 출신 설정인 박민영과 이기광이 현실과 동떨어진 과장된 억양을 구사해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경상도민을 자처한 한 X(옛 트위터) 이용자가 “(사투리를) 제발 그만해 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게시한 이들의 사투리 영상은 2만회 이상 재게시되며 많은 이용자에게 공감을 얻었다. 과거 JTBC ‘아는 형님’에서 코미디언 김영철이 미디어 속 사투리를 지적한 영상이나 7년 전 방영한 JTBC ‘크라임씬 3’ 속 걸스데이 소진의 사투리 영상까지 다시 회자될 정도였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쿠키뉴스에 “해당 지역에 사는 이들이 느끼기엔 현실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더욱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왜곡된 사투리가 도드라지면 시청자 입장에선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가짜’에 대항하다… 사투리 네이티브의 반란
미디어 속 사투리가 제각각이다 보니 이를 향한 반작용도 생겨났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사투리 강의 유튜브 콘텐츠가 대표적이다. 크루 유튜버 ‘하말넘많’이 이달 초 게시한 ‘미디어 사투리 기강 잡으러 왔어예’ 영상은 17일 기준 조회수 169만회를 넘어섰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속 어색한 사투리를 꼬집은 후속 영상은 147만회를 넘겼다. 댓글에는 “제대로 된 사투리공학 배우고 간다”, “경상도인인데 보면서 감탄의 연발을 날렸다”, “경남 사시는 이모가 나한테 하는 말이랑 똑같다” 등 뜨거운 반응이 가득하다. 이외에도 코미디언 김두영이 실생활에서 상황별로 사용되는 충청도 사투리 표현을 소개하는 영상 역시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속 일부 장면을 사투리로 다시 더빙한 영상 등도 인기를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네이티브’ 크리에이터들이 주목받는 것을 두고 “사투리를 향한 존중이 담겼기 때문”(정덕현 평론가)이라고 분석했다. 정 평론가는 “미디어 속 잘못된 사투리를 정정하려는 행동엔 해당 지역과 사투리를 귀하게 대하는 태도가 담겼다”고 짚었다. 과거 사투리가 비주류언어로 통하며 코미디 소재로 활용될 때와는 달라진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다. 정 평론가는 “실제 사투리 생활권에 있는 이들은 이 같은 영상에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며 “뉴 미디어가 표준어에 기반을 둔 채 사투리에 접근하던 전통 미디어를 향해 날린 역공”이라고 평했다. 의사표현에 적극적인 MZ세대가 만든 새로운 시류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김 평론가는 “목적성과 실용성에 주목하는 청년층은 자신의 의도에만 부합하면 낯선 것이어도 과감히 취한다”면서 “재미나 의사소통 등 목적에 맞게 사투리를 취하려는 현대인과 사투리를 제대로 알려주고자 하는 현지인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