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투자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세부 방안이 공개됐다. 그러나 시장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기존에 기대하던 세제 혜택 등 상장 기업의 실질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핵심 방안이 구체화되지 않아서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 프로젝트의 출발을 환영하지만, 향후 확실한 세제 지원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26일 금융위원회는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 논의를 통해 마련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의 세부내용을 발표했다. 국내 코스피·코스닥의 전체 상장기업(지난해 말 기준 코스피 809개사·코스닥 1598개사)이 대상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벤치마크 사례인 일본 도쿄거래소 방안과 달리 기업 가치 제고 계획 공시의 의무화나 상장폐지를 비롯한 패널티가 없다. 자율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게 핵심이다.
우선 금융당국과 유관기관은 상장기업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제공한다. 가이드라인은 △현황진단 △목표설정 △계획수립 △이행평가·소통으로 구성됐다. 아울러 기업 성장전략 등 3년 이상의 중·장기 자본효율성과 기업가치 제고에 초점을 뒀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상장기업은 최고 결정 기관을 이사회로 설정하고, 매년 1회 자사 홈페이지와 거래소에 이를 공시해야 한다. 중·장기 목표수준과 도달시점을 설정한 이후 계획 이행 및 목표 달성 여부에 대한 평가, 주주·외부투자자와의 소통과 피드백 결과도 함께 공개해야 한다. 공시 2년차 부터는 전년도 계획 이행·평가를 포함해 영문 공시도 적극 권고된다.
정부도 상장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세제 지원 인센티브를 내놨다. 강제가 아닌 자율적 권고인 만큼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함이다. 인센티브로는 △모범납세자 선정 우대 △연구개발(R&D) 세액 공제 사전 심사 우대 △법인세 공제·감면 컨설팅 우대 △부가세·법인세 경정 청구 우대 △기업승계 컨설팅 등이 거론됐다.
특히 기업가치 제고를 우수하게 수행한 상장기업 중심의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개발할 방침이다.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도 출시해 개인투자자의 투자 유도도 꾀한다. 또한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기업에 대한 투자를 판단할 때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감안하도록 스튜어드십 코드에도 반영한다.
그러나 이같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세부 방안 발표에도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0.77%(20.62p) 내린 2647.08에 장을 마감했다. 개인과 기관투자자가 각각 480억원, 851억원을 순매도하면서 지수 하락을 이끌었다.
아울러 밸류업 프로그램의 수혜주로 꼽혔던 저 주가순자산비율(PBR) 관련주도 일제히 내렸다. KRX 증권과 보험 지수는 각각 전 거래일 대비 2.74%, 4.30% 내린 736.29, 1885.87을 기록했다. KRX 은행 지수도 3.61% 하락한 770.80으로 주저앉았다.
이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실망감에 따른 매물 출하가 원인으로 추정된다. 증권가에서도 이미 이를 경고한 바 있다. 앞서 시장에 공개된 내용을 상회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기대감에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프로그램 기대가 증시를 움직이는 재료로 작용했다. 정책에 대한 낙관론이 주가를 끌어올린 것”이라며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실망심리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상장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세제 지원 혜택마저 미비했던 점도 문제로 보인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강력한 세제 혜택을 공개하는 대신 세정 지원 우대 등 기대감 대비 부실해 보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강승건 KB증권 연구원은 “기존 언론에서 보도됐던 내용 중심이었다”며 “수급 측면에서는 배당소득세의 분리과세 기대감, 기업 이행 측면에서는 강제성 부여 여부 등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다만 당국은 밸류업 프로그램이 중·장기적인 프로젝트인 만큼, 출사표를 밝힌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성공을 거두기 위한 제도 안착을 위해 시장전문가들과의 소통 및 개선으로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이다.
박민우 금융위원회 자본시장국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거래소와 금융감독원, 금융투자협회 등 유관기관들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해 협의해 왔고, 대략적인 컨셉은 올해 금융위 업무계획의 세부 과제로 포함됐다”며 “오늘 발표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시작을 의미한다. 향후 시장전문가들의 의견을 지속 수렴하면서 지속 보완·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중·장기적으로 바라보는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호평했다. 다만 확실한 세제 지원 혜택이 동반돼야 한다고 꼬집는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프로그램 계획·공표 가이드라인의 구성에 있어 종합적이고, 향후 이행 공표라든가 투자자 소통을 통해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프로그램으로 생각된다. 이는 코리아 밸류업 에 있어 매우 긍정적”이라면서도 “저평가된 중견 이하 기업들의 참여가 중요하다. 자사주 배당 및 투자 등 다방면에 걸쳐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이준서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밸류업 프로그램 방향성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실질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방안이라 생각한다”며 “다만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는 몇 가지 방안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자사주 제도개선 방안을 지난달 정부가 발표했는데, 한 단계 더 나가서 시가총액 산정 시 유통주식 수로 산정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발행주식 기준이라 소각이 되지 않는 이상 자사주 매입 효과는 미비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세제 감면 효과가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주가수익비율(PBR)이 높은 기업에 대해 상속이나 증여세를 감면해 주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우리와 일본 기업의 차별점이 인센티브라고 한다면, 특정 기업의 PBR이 산업 평균보다 높을 시 상속·증여세를 감면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한편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세부 가이드라인 확정 시기는 오는 7월 발표될 예정이다. 정지헌 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는 “거래소는 이달 중 밸류업 지원방안 전담조직과 자문단을 운영하고, 오는 3월부터 상장기업 등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6월까지 세부 가이드라인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창희 기자 windo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