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태아의 성별을 임신 32주까지 알리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의료법 조항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놓으면서 이제 임신부들은 임신 주수와 상관없이 의료진에게 태아 성별을 문의할 수 있게 됐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환영한다면서도 ‘태아 성감별 금지법’이 아예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29일 입장문을 내고 “태아 성감별을 32주 이후부터 허용하는 것은 사실상 태아 성감별을 허용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면서 “부모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규정으로 실효성이 없는 만큼 태아 성감별 금지법은 폐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태아 성감별 금지법은 남아 선호에 따른 성별 선택적 낙태로 성비 불균형이 초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1987년 제정됐다. 이후 내용과 처벌 수위가 개정돼 2016년 이후부터 임신 32주 이전 태아 성감별 시 의사 면허자격 정지 1년과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졌다.
지난 28일 헌법재판소는 의료법 20조 2항에 대해 재판관 6대3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9명 전원이 해당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데 동의했으며, 재판관 3명은 위헌 결정보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통해 국회에 개선 입법 시한을 줘야 한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은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산부인과의사회는 헌재 결정을 반기면서도 태아 성감별 금지법의 완전 폐지를 주장했다. 의사회는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으로 인한 남아선호 사상의 감소로 2010년대 중반부터는 출산 순위와 관계없이 자녀의 성별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거의 없어졌다”고 전했다. 이어 “2010년대 초반까지 셋째 아이 이후 자녀를 낳는 동기를 보면 남아 출산이 주요했다고 추정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는 출산 순위에 관계없이 자녀의 성별에 대한 인위적 개입이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가임기(15~44세) 여성 1만 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인공 임신 중절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공 임신 중지를 한 임신 주수는 평균 6.4주였다. 절반 이상(55.8%)이 4~6주(4주 19.9%, 5주 19.6%, 6주 16.3%)였다. 누적 비율로 보면 임신 주수 4주 이하는 31.5%, 8주 이하 84.0%, 12주 이하 95.3%, 16주 이하는 97.7%였다. 의사회는 “일반적으로 초음파를 이용한 태아 성감별이 가능한 최소 임신 주수는 16주인데, 적어도 인공적인 임신 중지 원인의 97.7%는 태아의 성별을 모른 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의사회는 “부모가 먼저 의료인에게 태아의 성별을 확인·고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의료인이 이에 응하는 경우가 대부분임에도 태아 성감별 금지법 위반은 의료인에게만 적용된다. 이는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최근 태아 성감별 금지법으로 인해 처벌받는 사례는 거의 없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필요치 않은 법 규정은 폐지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