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재는 유빈이가 구해준다”…13만명이 불법 PDF방 이용

“교재는 유빈이가 구해준다”…13만명이 불법 PDF방 이용

기사승인 2024-03-04 06:21:01
불법 PDF 공유방 텔레그램 ‘유빈 아카이브’에 인터넷 강의 교재가 공유되는 모습. 

“인터넷 강의 교재가 필요하시다고요? 사지 말고 ‘유빈 아카이브’(불법 교재 공유방)로 가세요.”

최근 수험생들 사이 학원 교재를 불법 파일로 공유하는 채팅방이 성행하고 있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이용자가 계속 늘고 있어 청소년들의 저작권 인식 문제는 물론, 학원가와 출판사 피해도 큰 상황이다.

지난달 27일 직접 SNS를 확인해 보니 텔레그램 다수의 채팅방에서 불법 교재가 공유되고 있었다. 대표적인 불법 교재 공유방인 ‘유빈 아카이브’ 가입자수는 13만명이 넘었다. 지난해 수능 응시자가 45만여명인 점을 고려하면, 수험생 약 30%가 불법 교재 PDF 방을 이용 중인 셈이다. 비밀번호도 없어서 채팅방 이름만 알면 누구나 검색해서 ‘들어가기’를 눌러 입장할 수 있었다.

불법 교재 방에는 인터넷 강의 교재는 물론, 현장에서만 구할 수 있는 자료도 올라왔다. 특히 서울 강남 대형 학원의 모의고사 문제집과 해설 등도 공유되고 있었다. 과목별 불법 교재 자료가 올라오는 채팅방도 있었다. ‘수학’ 공유방에는 3만여명, ‘지구’ 2만여명, ‘생명’ 1만5000여명, ‘사탐’ 1만여명 등이 가입한 상태였다. 

불법 교재 공유방의 존재는 수험생들 사이에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상위권 대학 입학 예정이라는 한 학생은 “학교 선생님들이 텔레그램 방을 알려줬다”라며 “불법은 맞지만, 양심을 챙긴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누릴 수 있을 때 누리라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또 다른 수험생도 “서울 강남, 대치동 현장 강의에 가야 얻을 수 있는 자료도 (불법 공유방에서) 다 구할 수 있다”라며 “수능 연계 교재인 EBS만 보는 것과 사설 교재를 보는 건 차이가 크다”라고 말했다.

일부 수험생은 불법 여부를 인지조차 못 하고 있었다. 불법 PDF 채팅방에서 교재를 구매한 적 있다는 고등학생 B(18)양은 “공유된 PDF 파일을 개인이 받는 건 불법이 아니다”라며 “불법이 아니기에 안 쓸 이유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명 인터넷 강의 비용에는 문제집과 강의료 등이 포함돼 있다. 강의를 듣지 않고 문제집만 풀려고 하는 경우 개인 거래가 훨씬 싸다 보니 SNS를 통해 문제집을 찾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일대 모습. 사진=임형택 기자

“교재 공유로 교육 격차 해소…많은 학생 돕는 일”

불법 교재 공유방 운영진도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것”이라며 오히려 당당한 태도였다. 유빈 아카이브 채팅방에 올라온 공지글에서 관리자는 “우리가 당당한 수단으로 시도하는 게 아닌 건 맞지만, 교육 격차 해소와 기회의 평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방을 운영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위험한 일이기도 하지만, 많은 학생을 도울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라고도 덧붙였다.

한 대형 학원 입시 자료를 공유한 제보자도 “유빈 아카이브를 비롯한 공공재 방은 평등 교육 희망의 등불”이라며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에 대한 구제의 가능성이자 자본주의 실현의 발판”이라 주장했다. 그는 “분명히 우리는 저작권법을 위반하고 있으나, 전국 수험생 20%를 범죄자로 내몰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것이 우리 교육이다. 처절하다”라고 했다. 이어 “정의라고 말하지는 않겠다”라면서도 “우리 교육이 바뀌지 않는 한 유빈 아카이브는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3월 교육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22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사교육을 받는 고등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69만7000원으로 조사됐다. 고등학생 B양은 “시중에 나온 유명 인터넷 강사들의 문제 풀이 교재를 과목별로 사면 최소 200만원 이상이 든다”라며 “문제집을 사는 게 부담”이라고 했다. 이어 “내가 온라인에서 한 과목 교재를 사면 다른 과목 교재를 가진 사람과 서로 교환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학원 측 “암암리에 교재 공유…대응 어려워”

입시 학원들은 불법 교재 공유방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나, 검거하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학원 입장에선 굉장히 피해가 크고 중요한 사안”이라며 “공식 집계되는 것이 아니고 암암리에 공유되는 중이라 제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남윤곤 메가스터디교육 입시전략실장도 “불법 교재 파일이 수험생들 사이 공유되는 상황은 알고 있다”라며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워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는 불법 교재 공유는 명백한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저작권보호원 관계자는 “저작권법 30조에 따라 △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 개인적으로 △ 한정된 범위 안에서 이용하는 경우엔 저작물을 복제할 수 있다”면서도 “10만명이 모인 불법 교재 공유방은 한정된 범위라고 볼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불법 교재 유포자는 저작권법 위반이 확실하다”라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 적용이 가능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불법 교재 공유 자체가 불법이기에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저작권보호원 관계자는 “교재 PDF 파일을 개인이 받는 경우 저작권법 적용이 살짝 모호하다”면서도 “처벌 여부를 떠나 양심에 따라 파일이 불법복제물이자 저작권법 침해 행위라는 걸 알고 공유방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조유정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