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 회장직 부활…‘경쟁력 제고’ 성장통 될까

유한양행, 회장직 부활…‘경쟁력 제고’ 성장통 될까

기사승인 2024-03-28 06:00:07
유한양행은 지난 15일 서울 동작구 본사에서 열린 제10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장·부회장 직제를 신설한다는 내용의 ‘정관 일부 변경의 건’을 통과시켰다. 유한양행


유한양행이 글로벌 제약사로 거듭나기 위해 회장직을 부활시키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특정인의 장기집권을 위한 조치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지만, “성장을 위해 필요한 선택”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며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27일 쿠키뉴스 취재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지난 15일 제10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회장직 신설을 골자로 한 안건을 상정한 이후 선임 절차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주총 당시 95%의 찬성률을 얻어 안건이 통과됐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주주와 투자사 50여 군데 등 관계자 모두의 동의 하에 투명한 절차를 거쳐 회장, 부회장직을 선출하고자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분에게 맡길지 아니면 현 사장, 부사장 직급 내에서 선출할지 등을 아울러 검토하고 있다”며 “여러 방안을 열어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관계자는 “상반기 중 결정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예상했다.

유한양행은 회장직 신설 안건을 상정하면서 ‘회장·부회장은 대표이사만 오를 수 있으며 대표이사는 최대 연임까지만 가능하다’는 내용의 내규도 신설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특정인의 사유화’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한양행은 창립자 고(故) 유일한 박사의 창업주의에 따라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전문 경영인 체제를 유지해왔다. 회장직은 유 박사의 뒤를 이은 연만희 고문이 회장에서 물러난 지 28년 만에 부활했다.

유한양행은 회장직 부활 안건을 처음 제시한 지난 2월부터 일부 주주와 임직원들로부터 조욱제 대표나 이정희 의장을 회장직 등에 선임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아왔다. 주주총회 땐 유한양행 일부 임직원들이 본사 앞에 모여 “1회 중임 가능한 3년 단임 전문경영인 제도를 회장, 부회장직 신설로 장기 집권하려는 전·현 사장의 뜻을 꺾어야 한다”며 트럭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 15일 주주총회 당시 유한양행 일부 임직원들이 본사 앞에 모여 “1회 중임 가능한 3년 단임 전문경영인 제도를 회장, 부회장직 신설로 장기 집권하려는 전·현 사장의 뜻을 꺾어야 한다”며 트럭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업계에서는 이를 바라보는 입장이 갈린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토착 세력들이 오너 패밀리의 감시가 없는 틈을 타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며 “회장, 부회장이라는 새로운 직제가 신설된 것은 누군가가 회장직에 앉아 회사를 좌지우지하려는 사전 포석이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한 제약사의 임원급 인사는 “대부분의 제약사들이 회장, 부회장 직급을 두고 있다”며 “마케팅이나 영업, 인사 활동을 위해선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직함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한양행의 경우 연임 1회 체제를 유지하며 직급만을 새로 추가하는 것이라서 특정인의 장기 특권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유한양행은 이번 정관 개정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필수적 수단’이라고 방점을 찍었다. 조욱제 대표는 주주총회에서 “회사 성장을 위해 필요한 직제”라며 “우수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이사 직함이 필요한데 회장 등의 직제가 없는 현행 정관에서 사장 영입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피력했다. 

유한양행은 6개 본부를 6명의 부사장이 책임지는 형태를 띠고 있다. 회사 규모가 커지면 사장이나 부사장 직급 인력이 늘어나게 되고, 결국 이들을 총괄하는 대표이사는 더 높은 직급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유한양행의 목표가 ‘글로벌 50대 제약사로의 도약’인 만큼 이사급 이상의 유능한 외부 인력을 영입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유연한 직제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유한양행은 지난해에만 김열홍 연구·개발(R&D) 전담 사장, 이영미 R&BD 본부장(부사장) 등 굵직한 인재를 영입한 바 있다. 

유한양행 관계자는 “여러 우려가 존재하는 걸 알고 있다”면서도 “감사위원회제도를 둔 이사회가 존재하고 수많은 관계자들이 얽혀있기 때문에 특정인이 장기 집권을 노리거나 사유화하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투명한 절차로 회장, 부회장직을 선출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신중하게 절차를 진행해 나갈 방침”이라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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