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팝 팬덤 내에서 불가촉천민이라는 자조가 이어졌다. 가수 아이유 콘서트 티켓을 구매한 누리꾼 A씨가 소속사로부터 각종 소명을 요구받다 끝내 부당 취소당했다고 폭로하면서다. 아이유 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K팝 팬덤은 “개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기획사의 행태가 잘못”이라며 뜻을 모았다.
기획사를 향한 K팝 팬덤의 반감은 유구하다. 팬들 사이 질서를 세우겠다는 명목 아래 비대한 압력을 행사해서다. 지난해에는 한 기획사가 팬 사인회에서 지나친 신체 수색을 벌여 비판이 쏟아졌다. 콘서트철만 되면 과도한 본인 확인 절차로 논란이 일곤 한다. 팬들의 간절한 마음을 노린 암표상과 이를 색출하려는 소속사의 칼날 속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일이 적지 않다.
아이유 소속사는 일찌감치 암표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암행어사 제도를 운영해 왔다. 팬들이 자체적으로 암표를 색출하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의도는 좋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억지 고발이 늘며 의도가 변질됐다. A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친구가 표 구매를 도왔다는 A씨의 SNS 글을 본 누군가가 소속사에 고발했고, 소속사는 이를 ‘용병을 통해 표를 얻었으니 부정 거래인 암표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번 일이 도마 위에 오르자 과거 신여권을 가져갔으나 여권증명서가 없어 입장을 못하고 푯값 또한 환불받지 못한 사례까지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었다. 온라인상에서 “딸들이 티켓팅해주는 트로트 공연은 부정티켓거래가 판치는 암거래의 장이냐”(X·@mala*******), “팬에게 공항에서도 안 할 과도한 소명과 본인인증 요구 작작 하라”(X·@zzin*****) 등 원성이 이어지자 아이유 측은 9일 새벽 공지 글을 올리고 본인 확인 절차 과정 개선을 약속했다. 이외에도 암행어사 제도를 폐지하고 영구제명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기획사의 시름은 나날이 깊어진다. 암표를 좌시할 순 없으나 그 과정에서 늘 잡음이 생겨서다.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예매 대행사를 통해 티켓을 판매하는 소속사 입장에선 해당 플랫폼이 수집한 정보만으로 암표를 색출해야 한다. 개인정보법 등으로 인해 소속사와 예매 대행사 모두 한정된 정보만을 갖고 있다. 매크로를 활용한 부정 거래를 색출하기 위해 일반적인 구매 방식과 다른 표를 살피지만, 한계는 여실히 있다. 익명을 요구한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표를 되파는 이들의 방식이 갈수록 교묘해지다 보니 현실적으로 모든 암표를 거를 시스템을 마련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다수 가요관계자는 “팬덤의 자정 노력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일부 기획사가 신분증 및 티켓 구매 내역을 확인한 후 팔찌를 채우는 방식을 도입하자 이를 손상 없이 타인에게 옮겨주는 업자가 등장하기도 했다. 관계자는 “팬들이 불법적인 방식을 이용하지 않는 게 건강한 K팝 문화를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암표를 잡겠다는 의지만으로 여러 방식을 시도하기엔 선량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위험이 크다”면서 “검증 시스템을 완벽히 갖추는 데 어려움이 따르는 만큼 고민이 많다”고 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회사는 팬들에게 책임을 무작정 전가해선 안 된다. 팬 역시도 무턱대고 회사를 비판하는 건 옳지 못한 행동”이라며 “웃돈을 주고 표를 구매하는 일이 범죄행위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암표가 공연문화와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의식이 사회에 각인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