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스’가 훼손한 e스포츠 공정 [기자수첩]

‘디도스’가 훼손한 e스포츠 공정 [기자수첩]

기사승인 2024-04-17 06:00:50
디도스 공격으로 경기가 중단된 LCK. 라이엇 게임즈

지난 14일 프로야구에서 야구팬들 분노를 유발하는 오심이 나왔다. 심판이 실수를 덮기 위해 의도적으로 판정을 조작했다. 공 하나에 울고 웃는 야구에서 이 정도면 ‘승부조작’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ABS(자동 볼 판정 시스템)가 분명히 볼로 인식했다고 해라. 우리(심판)가 빠져나가려면 그것밖에 없다”는 충격적인 말도 들을 수 있었다. 경기장에서 가장 공정해야 할 심판이 이에 역행한 사례다.

KBO는 해당 경기 심판진을 직무 배제하고 인사위원회에 회부했다. 일각에선 영구 퇴출 가능성까지 제기한다. 스포츠를 잘 모르는 혹자는 공 하나를 잘못 본 오심에 영구 퇴출은 너무하지 않냐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스포츠의 본질을 이해하면 이들에게 중징계를 가하는 사유가 쉽게 설명된다.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공정성’ 위반이 이 사건의 핵심이다.

이보다 공정성 훼손이 심각하게 발생한 사례가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에서 있었다. ‘디도스’(DDoS‧ 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이 주원인이다. 디도스 테러는 굳건했던 한국 e스포츠 산업을 완전히 흔들었다. 디도스가 잠식한 e스포츠에서 ‘공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공정이 없어진 순간부터 e스포츠는 ‘스포츠’가 아니라 ‘단순 게임’으로 전락했다.

디도스 공격 때문에 리그 전체가 마비됐다.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LCK는 결국 경기를 녹화중계로 전환했다. 현장감이 가장 중요한 스포츠에서 녹화중계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부터 이미 공정성이 저해됐다. 경기 도중 디도스 공격을 받은 일부 팀은 현장에서 하루 종일 대기하는 경우가 발생했고, 이는 선수단 컨디션 하락으로 이어졌다. 

LCK는 자체적인 오프라인 서버망을 구축해 리그를 대상으로 한 디도스 테러를 막을 수 있었다. 어렵사리 리그 중단은 막았으나 이내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디도스 테러가 리그를 넘어 팀 차원 문제로 확장됐다. 많은 구단이 디도스 공격을 받아 연습에 차질을 빚었다. 

가장 크게 피해받은 구단은 LCK 최고 인기 팀 T1이었다. T1 선수들은 개인 연습을 못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e스포츠 상징인 ‘페이커’ 이상혁까지 이례적으로 “공평하지 못한 연습 기회”라고 지적하며 ‘공정성’ 문제를 제기했다. 야구로 치면, 투수가 불펜 피칭도 없이 본 경기에 임하는 셈이다.

피해를 적게 받아 이긴 팀도, 피해를 호소한 팀도 찝찝한 상황이 됐다. 일부 팀으로 집중되는 디도스 공격에 이미 운동장은 기울어졌다. LCK는 디도스에 대해 확실한 방어를 해야 하는 숙제를 남겼다.

다음 시즌에도 디도스 공격이 없을 거란 보장은 없다. 이제는 확실한 대응책을 마련해 디도스 테러에 대비해야 한다. LCK 차원에서 체계적인 방어 매뉴얼을 구축해 디도스 방해 공작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디도스로 피해받은 팀이 있다면, 곧바로 최상위권 MMR(비슷한 실력의 상대와 게임하는 시스템) 계정을 지급해 개인 연습에 지장 없게 해야 한다. 10개 구단 합의도 필요하다. 디도스 테러는 T1뿐만 아니라 모든 팀이 언제든 당할 수 있는 일이다. 남 일이라 생각 말고 리그 차원으로 대응해야 하는 문제다.

대중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공평한 그라운드에서 땀과 열정만으로 승부를 내기 때문이다. 차별이 만연한 현실 사회와 다른 ‘공정성’이 대중을 스포츠로 이끌었다. 만약 다가오는 시즌에도 올 시즌처럼 공정성이 크게 훼손된다면, e스포츠는 ‘스포츠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팬들의 외면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전망이다. 

e스포츠 산업은 지난해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흥행을 기반으로 한층 더 성장했다. 롤드컵 이후 치러지는 첫 대회였던 LCK 스프링은 디도스 악재 속에도 결승전 뷰어십(시청자 수) 최대 265만명을 달성했다. 이는 LCK 역대 최다 뷰어십이다. e스포츠를 향한 대중의 관심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공정성’이 훼손된다면 어렵게 키워놓은 e스포츠 시장이 단숨에 내려앉을 수 있다. LCK 이전, 큰 인기를 끌었던 스타리그는 ‘승부조작 사태’를 겪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공정성이 훼손되자 팬들은 한순간에 등을 돌렸다. 스포츠의 핵심 가치는 ‘공정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영건 기자 dudrjs@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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