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만 심으면 꿀벌 돌아오나…개화 고작 ‘17일’ [꿀 없는 꿀벌③]

아까시만 심으면 꿀벌 돌아오나…개화 고작 ‘17일’ [꿀 없는 꿀벌③]

기사승인 2024-04-24 11:00:14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아까시나무 꽃이 지면, 꿀벌들의 먹이가 별로 없어. 여러 밀원수를 심는 게 양봉의 기본인데 그것마저 안 되고 있는 거야. 정부가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는 것 같아.”

양봉장을 운영하는 모순철 한국양봉협회 고양시 지부장이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나라 꿀벌은 주요 밀원수인 아까시나무의 꽃이 피는 봄 이외엔 먹이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꿀벌 실종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선 밀원수종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24일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안동대 산학협력단 자료에 따르면 국내 천연벌꿀 생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아까시나무는 1980년대 32만헥타르(ha) 규모에서 2020년 3만6000ha로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기후변화 등으로 개화 시기마저 줄어들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올해 1월 발간한 ‘밀원자원 수목류Ⅰ’에 따르면 지난 2007년 30일이던 개화시기는 올해 17일에 그쳤다. 

문제는 현재 식재되고 있는 밀원수종이 아까시나무, 백합나무, 헛개나무 등 일부 수종에 집중돼있다는 점이다. 쿠키뉴스가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제출 받은 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2022~2023년 식재된 총 밀원 면적은 7179.1ha였다. 

밀원수종별 식재량은 백합나무 2251.4ha, 헛개나무 984.4ha, 산벚나무 865.5ha, 아까시나무 498.4ha 순이었다. 반면 꿀 생산량이 높은 쉬나무는 51.9ha 식재에 그쳤고, 피나무는 아예 심지 않았다.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아까시나무 이외의 다양한 밀원수를 심어 수종 간 개화시기 차이를 활용하면 3~10월 연속적으로 꿀벌들이 먹이를 확보할 수 있다. 산림과학원 연구에 따르면 아까시나무는 매년 5월 10~27일, 피나무는 6월18~28일, 헛개나무는 6월 18~30일, 쉬나무는 7월18일~8월8일 사이에 꽃이 피는 것으로 조사됐다.

꿀 생산량에서도 쉬나무, 피나무 등이 아까시나무를 월등히 앞선다. 산림과학원·그린피스 연구 자료를 보면, 아까시나무는 1ha에 736그루를 심었을 때 평균 38kg의 꿀이 나온다. 피나무는 같은 면적에 490그루를 심어 95kg, 헛개나무는 625그루에 301kg, 쉬나무는 215그루에 무려 400kg의 꿀 생산이 가능하다. 꿀벌이 하루 동안 해당 꽃을 얼마나 찾아가는지(방화) 분석한 결과에서도 아까시나무는 평균 372마리인 반면, 쉬나무 1575마리, 헛개나무 1470마리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벌이 연중 내내 꿀을 구할 수 있도록 밀원수종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먹이를 확보할 수 있는 기간(채밀기간)을 확대하면 꿀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고, 꿀벌도 보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봄철 이상기온으로 인해 개화시기가 줄어드는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하다.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주도적으로 지역 특화형 밀원수를 심고 보급한다면 현 상황을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며 “산림 계획을 세울 때 양묘(묘목을 심고 기르는 것) 과정까지 포함해야 한다. 묘목 공급이 안 돼 밀원수를 심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승환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곤충학 교수도 “밀원식물들의 개화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봄부터 가을까지 꿀벌 먹이 확보가 이어지려면 다양한 식물을 식재할 필요가 있다”며 “한두 종 심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꿀벌 생존이 인류의 식량안보와 직결되는 만큼 정부가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 교수는 “우리가 먹고 사는 농산물의 70% 이상이 곤충에 의해 수정이 된다. 벌이 없어지면 종자 생산이 어렵고, 가축들이 먹을 사료의 양이 줄어들어 식품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며 “벌이 없어지면 식량안보에 위협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용수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연구관 역시 “우리나라 식량 생산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는 6조원에 달한다”며 “꿀벌 의존도가 높은 국내 농업이 타격을 받으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꿀벌이 멸종하면 부유층이 식량 자원을 독점하게 되고, 계층·국가 간 ‘식량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며 “수년 내에 인류의 생존이 불가능해진다는 미국 연구보고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은빈, 최은희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최은희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최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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