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계 1년 살림살이를 결정짓는 ‘2025년도 요양급여비용 계약협상(수가협상)’의 막이 오른 가운데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공백 혼란이 논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석 달가량 이어진 정부와 의사단체의 갈등이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협상이 정상적으로 이뤄질지 불투명하다. 의료계의 요구를 아우르며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담보해야 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셈법은 복잡해질 전망이다.
7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과 5명의 의약단체장들은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2025년도 요양급여비용 계약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자리엔 이성규 대한병원협회 회장, 마경화 대한치과의사협회 보험부회장, 윤성찬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최광훈 대한약사회 회장, 이순옥 대한조산협회 회장이 참석했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불참했다.
‘수가’로 불리는 요양급여비용은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해 건강보험 당국이 지불하는 대가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1년씩 계약이 이뤄지며, 매년 5월31일까지 체결해야 한다. 해마다 내는 건강보험료는 수가협상 결과에 따른 영향을 크게 받는다. 국민으로부터 거둔 건강보험료로 의료 공급자에게 수가를 지급하기 때문에 재정을 책임지는 건보공단으로선 수가협상이 한 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올해 협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공의 이탈에 이어 수련병원 교수들마저 주 1회 휴진에 나서며 의료진의 고충은 커지고 있고, 의과대학 입학 정원 증원을 두고 정부와 의사단체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의약단체는 어려움을 토로하며 수가 인상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병원계는 연쇄도산 위기에 빠졌다. 병원협회가 전국 500병상 이상 수련병원 50곳을 대상으로 경영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 2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후 병원당 의료 수입은 평균 84억7670만원 감소했다. 특히 1000병상 이상 의료기관의 의료 수입은 전년 대비 20% 줄었다.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상당수 대형병원들은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거나 마이너스통장을 개설한 상태다.
이성규 병협 회장은 “그동안의 협상은 재정 지출 억제와 건강보험 가입자 부담 완화에 초점을 맞췄던 게 사실”이라며 “건보공단이 의료 공급의 왜곡을 개선하기 위해 균형 있는 협상에 임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국민이 제때 치료받고 건강한 삶을 누리는 것은 건강보험 제도가 존재하기 하기 때문”이라며 “위태로운 의료 공급망을 복원하기 위한 공단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3년간 건보 재정 수지는 흑자를 보였지만, 중장기 재정 전망은 밝지 않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며 보험료 수입 기반도 약화되는 양상이다. 필수의료에 투자하면서 재정 긴축을 기해야 하는 건보공단 입장에선 의약단체들의 요구를 무작정 받아주기 어렵다.
협상 결과에 따라선 내년 수가가 오르면 건강보험료율도 상승할 수 있다. 올해 건보료율은 지난해와 같은 7.09%로 묶여있다. 건보공단은 지난해 수가를 의원 1.6%, 병원 1.9%, 치과 3.2%, 한의 3.6%, 약국 1.7%, 조산원 4.5%, 보건기관(보건소) 2.7% 올려줬다. 평균 인상률은 1.98%(추가 소요재정 1조1975억원)였다.
하지만 정부가 필수의료를 강화하는 정책 패키지를 발표하고, 저평가 되는 의료 항목을 집중 인상하는 방향을 제시한 만큼 사실상 의료 행위별 평균 인상률이 낮게 책정될 공산이 크다. 수가체계 아래 의료 행위는 크게 검체, 기능, 영상검사, 수술, 처치(기본진료) 등 5개로 나뉜다. 그동안 공단은 수가협상을 통해 요양급여비용을 일괄적으로 인상해왔다.
정부는 주요 의료 행위가 저평가 되는 것을 개선하기 위해 행위별 환산지수(수가) 인상률을 차등 적용할 방침이다. 필수의료를 보환하고자 수술이나 처치 등 원가 보상이 낮은 행위는 올리고, 높은 행위는 낮추는 식으로 각 행위를 구분해 조정한다. 기본진료와 수술 원가보상률은 각각 85.1%, 81.5%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검체 원가보상률은 135.7%, 영상 117.3%다.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의 침체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별 의료 격차는 해소하고 왜곡된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세워야 한다”며 “위험도와 난도가 높은 의료 행위는 충분히 보상받도록 수가 불균형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필수의료체계 구축과 의료 인프라 유지, 수가 인상이 국민의 건강보험료 부담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합리적인 균형점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의사단체와 정부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는 것도 부담이다. 건보공단은 의협이 협상에 나설 수 있도록 소통과 배려에 기반한 대화의 자리를 만들겠단 입장이다. 본격적인 협상 절차는 5월 셋째 주부터 진행된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의료현장 실태와 경영 상황을 충분히 공유할 수 있도록 재정소위원회와 의료 공급자, 공단 간 소통간담회를 실시할 계획이다”라고 전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