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최초 도입 ‘모니터링 영상확인 시스템’, 빛 발해
-“내 돈 찾는데 왜” 성내는 고객…“조금만 더 협조를”
지난 3월 평일 오후 신한은행 서울 소재 한 영업점. 신한은행 지점 중에서도 바쁘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고객이 몰리며 이날도 영업점은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은행 창구 직원 김소영(가명·여) 프로 앞으로 중단발 머리에 깔끔한 화장, 정장 차림의 A씨(50대·여)가 걸어왔다.
“잘 되던 비대면 거래가 갑자기 뭔가 안되는 것 같아요. 지급정지 풀려고 왔어요”. A씨가 창구 앞 의자에 앉자마자 또박또박 한 말이었다. ‘뭔가 이상한데?’. 단정한 복장에 예의바른 말투, 계좌 지급정지 해지 용건 심각성과 거리가 멀었다.
계좌를 조회한 뒤 김 프로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지급정지를 건 부서는 보이스피싱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신한은행 소비자보호부. 신한은행은 의심거래 발생 시, 금융거래 중인 고객이 예금주 본인과 상이하거나 본인 확인에 응하지 않을 경우 거래를 중단하는 등 적극 대응한다. 이 사례가 딱 여기에 해당했다. 계좌 거래 내역은 의심에 확신을 더했다. “큰 금액이 자주 왔다갔다 하는 것도 그렇고, 일반 고객 거래과는 달랐어요.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김 프로는 지난 7일 쿠키뉴스와 만나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김 프로는 침착하게 A씨에게 “확인해보겠다”고 말한 뒤 바로 소비자보호부에 전화를 걸었다. 소비자보호부 담당자는 보이스피싱 의심이 된다며, 경찰을 불러야 할 것 같다고 알렸다. A씨를 은행에 붙잡아놓고 경찰에 신고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든 게 A씨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이뤄져야 했다.
김 프로와 영업점 다른 직원, 그리고 신한은행 소비자보호부의 ‘팀플레이’가 착착 진행됐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옆자리 직원은 경찰을 불렀다. 소비자보호부는 A씨에 전화를 걸어 몇 가지를 확인하는 척 시간을 끌었다. A씨가 다른 이에 전화거는 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그 사이 경찰이 출동해 A씨를 현장 검거할 수 있었다.
고객이 지급정지 해제를 요구한 뒤 경찰 출동까지 걸린 시간은 15분 내외.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피해자들에게 받은 돈을 사기 조직에 전달하는 ‘보이스피싱 인출책’이었다. 그의 직업은 무려 공무원이었다.
어떻게 이처럼 빠른 대응이 가능했을까. 실시간 영상으로 본인 여부를 확인하는 ‘보이스피싱 모니터링 영상확인 시스템’이 빛을 발했다. 신한은행이 지난해 8월 시중은행 최초로 도입했다. 해당 시스템을 통해 이상 금융거래가 발생하면 모니터링 직원이 고객에 영상통화를 요청해, 은행 데이터에 보관된 고객정보와 대조해 본인 여부를 즉시 확인할 수 있다. 김 프로는 “내부 모니터링으로 한번, 창구 직원이 한번, 이렇게 이중 삼중으로 시스템이 설계돼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이기 위한 신한은행의 노력은 이뿐만 아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3월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한 취약 계층을 위해 300억원을 출연해 생활비, 법률·심리상담 비용, 보험가입 등을 지원했다. 가족간에 미리 암호를 만들어 지인사칭 메신저피싱에 대비하자는 ‘우리가족 암호만들기 캠페인’을 그룹사 전체로 확대해 실제 메신저피싱 비율을 줄였다. 이에 대한 공로로 정상혁 신한은행장이 금융감독원장 기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당 영업점 방문 고객 중 매일 2~3명씩은 사기피해 발생을 우려해 ‘본인계좌 일괄지급정지’를 신청하고 있다. 보이스피싱이 여전히 만연하다는 뜻이다. 은행 창구 직원도 당일 입금 건이고, 500만원 이상의 고액일 경우에는 고객에 돈을 왜 찾아가는지, 입금 사유는 무엇인지 물어보며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객 협조가 가장 중요하다고 김 프로는 강조했다. ‘내 돈 찾아가는 데 왜 그러냐’고 화를 내거나, 500만원 이상 인출 시 작성하는 맞춤형 문진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고객이 여전히 많다는 설명이다. 김 프로는 “고객의 소중한 자금을 보호하기 위해 은행도 여러 프로세스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며 “직원도 혹시나 싶어 물어보는 질문에 고객분도 조금만 더 솔직히 말씀해 주셨으면, 그리고 조금만 여유를 갖고 기다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