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찬성 동료 ‘좌표’ 찍고 비방하는 의사들

의대 증원 찬성 동료 ‘좌표’ 찍고 비방하는 의사들

‘3000명 증원’ 제안했더니 ‘신상 털기’ 나서

기사승인 2024-05-15 17:12:56
3월13일 서울의 한 종합병원 로비에 걸린 대형사진 옆으로 의료진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한 병원단체가 정부에 의과대학 입학 정원 3000명 증원을 제안한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의사들이 해당 단체 임원 명단을 커뮤니티에 공개하며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의대 증원에 찬성하거나 단체행동에 참여하지 않는 동료를 향한 의사들의 ‘좌표 찍기’가 되풀이되고 있어 논란이 커진다.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종합병원들 단체인 대한종합병원협의회(협의회)의 임원 명단이 의사 커뮤니티에 퍼지고 있다. 협의회가 일부 의사들의 표적이 된 것은 정부가 지난 10일 의대 정원 증원 효력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 재판부에 제출한 자료 때문이다. 이 자료들 중엔 협의회가 낸 의견 회신 자료가 포함됐는데, 법원에 집행정지를 신청한 의료계 측 변호인이 언론에 자료들을 공개하면서 처음 알려졌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협의회는 10년간 매년 의대생을 1500명 증원하고, 의학전문대학원생 1000명을 5년간, 해외 의대 졸업생을 5년간 500명씩 늘리자고 제안했다. 매년 3000명씩 5년간 1만5000명 늘리고, 이후에는 5년간 의대생 1500명을 증원하자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발표한 5년간 매년 2000명 증원 규모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협의회는 제출 자료에서 “대학병원과 의료원을 포함한 종합병원의 응급실, 수술과 등 필수의료 현장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없고, 심각한 구인난과 이로 인한 의사 인건비 급등으로 종합병원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며 “전공의들에게 의존해 운영되던 병동과 응급실에 대한 의사 충원 대책 없이 전공의 근무시간을 대폭 축소하면 전공의가 제공하던 진료의 절대적 공급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의회는 다만 “의대 증원 논의보다 필수의료 정책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졸업 정원제 부활 △전공의 근무시간 제한제도 폐지 △의료전달⋅수가체계 개선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에 대한 처벌특례법 마련 등을 제시했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의사 커뮤니티에는 협의회 회장과 부회장, 고문 등 임원의 소속 병원, 직책을 담은 글이 퍼졌다.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지난 14일 자신의 SNS에 “(협의회의 회장이 원장인) ○○병원의 의료법,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법, 의료사고, 근로기준법 위반, 조세포탈, 리베이트, 기구상 수술 등 사례를 의협에 제보해 주시기 바란다”고 글을 올렸다.

임 회장은 다른 SNS 글에선 “돈 없어서 치료 못 받는 취약계층은 모두 이 병원으로 보내주시기 바란다”며 “의료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라고 생각하신 답니다. 원장님 그분의 꿈을 이루어 드립시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주수호 전 의협 회장 역시 14일 자신의 SNS에 “염전주나 사탕수수 농장주에게 염전 노예나 사탕수수밭 노예 더 필요하냐고 물어보는 거와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해당 병원장은 “집단 테러를 당하는 것 같다”며 곤혹스러워했다. 지역 종합병원들이 의사 인력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어 관련 의견을 정부에 낸 것뿐인데 정부가 자료를 만들어 법원에 제출할 줄 몰랐단 입장이다. 병원장은 14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정부에 공식적인 입장을 낸 것도 아니고 이 문건에 대한 내용도 몰랐다”며 “지역 종합병원들이 힘든 것은 사실이다. 70~80%가 적자다. 이번 기회에 종합병원들이 어려운 게 좀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동료를 향한 의사들의 공개 저격은 이번만이 아니다. 의협은 조승연 인천의료원장을 의료법 위반(무면허의료행위) 혐의 등으로 지난달 25일 고발했다. 조 원장은 의대 증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대표적인 의료계 인사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이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촉발된 의료대란 문제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겠다며 개최한 심포지엄에선 의대 증원에 찬성 의견을 펴온 학자들을 깎아내리는 말도 나왔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대한민국 의료가 나아가야 할 길’이란 주제로 지난달 30일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발제자로 나선 최기영 분당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는 한국에 의사가 부족하다고 주장해온 김윤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당선인(전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과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를 향해 각각 “폴리페서(정치교수)”, “어쭙잖은 전문가”라고 비방했다.

정부는 즉각 제지에 나섰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를 주재한 뒤 “지금도 의사단체에선 의대 증원 찬성 의견을 낸 인사들을 공격하고 압박하는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며 “의사단체가 단체 내부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압박·공격하는 일부 관행은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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