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화리튬’ 포스코 연이은 사고에도…산업안전보건법 사각지대

‘수산화리튬’ 포스코 연이은 사고에도…산업안전보건법 사각지대

- 이차전지 소재, 산안법 미포함…법령 검토 단계
- 포스코 유출 사고 후유증 지속…인과관계 입증 어려워
- 회사 차원의 사전·사후 안전대책 마련 必, 법제화 동반돼야

기사승인 2024-05-22 14:00:02
포스코필바라리튬솔루션 공장 전경. 포스코 

포스코그룹의 수산화리튬 공장에서 수산화리튬 유출 사고가 발생한지 두 달이 지났지만, 해당 물질은 여전히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물질로 지정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법령 미비로 인한 근로환경 사각지대 형성 우려가 제기된다.

22일 현재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중 위험물질의 종류에는 이차전지 소재 중 하나인 수산화리튬이 지정돼 있지 않다.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에는 수산화리튬이 포함이 돼 있으나, MSDS는 해당 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 내 근로자에 대한 교육·관리요령·경고표지 배치 등 규정을 담고 있어 사실상 물질 자체에 대한 규정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고용노동부 여수지청 관계자는 “MSDS상 물질의 독성, 다뤄야 하는 방법 등 내용은 기재돼 있지만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물질엔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는 MSDS를 기준으로 참고하고 있다”면서 “안전보건공단 등에서 위험물질 판단에 대한 검토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전례가 없는 데다 국내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산화리튬이 인체에 접촉할 경우 심각한 화학 화상을 일으킬 수 있으며, 흡입 시에는 폐렴과 폐부종 발생 가능성 또는 기침과 호흡곤란까지 동반될 수 있다. 환경부 화학물질안전원에선 수산화리튬을 ‘매우 유해’한 물질로 구분하고 있다.

지난 3월 연이어 수산화리튬 유출 사고가 발생한 전남 광양시 율촌산업단지 소재 포스코필바라리튬솔루션 공장에서도 당시 현장에 있었던 근로자 약 300명이 병원 진료를 받았으며, 그 중 일부는 외적 증상뿐만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최근까지도 통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손상용 광주전남노동안전보건지킴이 운영위원장은 “당시 병원 진료를 받은 근로자들은 기관지·피부 통증 등을 주로 호소했었고, 특히 두어 차례 사고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초동 조치가 미흡했던 점 등으로 인해 정신적인 불안감·트라우마를 갖고 계신 분도 있었다”면서 “분진(고체 가루)이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언제 사고가 또 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은 “어지럽거나 몸에 힘이 없다는 증상을 호소하신 분들이 많았고, 조선대병원 등 최근까지 통원 치료를 하고 계신 분들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사고로 산업재해 신청을 한 근로자들은 업무관계성을 인정받아 대부분 승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법령 미비로 향후 해당 물질로 인해 만성질환 등 질병이 발생할 경우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최용혁 공인노무사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위험물질로 구분되지 않은 물질로부터 생긴 만성질환 등에 대해선 사업주 귀책사유가 없기 때문에 근로자가 직접 입증해야 하는데 일반인이 하기 쉽지 않으며, 전례가 없는 경우 전문가들도 입증이 쉽지 않아 연구 결과나 논문, 해외 사례 등을 참고해야 한다”면서 “기본적으로 법령에 없으면 ‘의무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보수적인 접근보다는 선제적으로 대응해 이러한 사각지대들을 좁혀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재뿐만 아니라 위험물질을 다루는 전반적인 과정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상용 위원장은 “법령 미비로 인한 규제 경중이나 산재 여부를 떠나, 회사 차원에서 안전 시스템 등 사전적 대비부터 사고 발생 시 초동 및 후속 조치를 마련할 수 있는 큰 틀이 없다는 측면에서 더 큰 문제”라며 “포스코 역시 한 번이 아닌 여러 차례 사고가 발생하는 과정에서 심각성을 인지했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안전 시스템이 부재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행정당국도 징계 등 사후 조치만 할 것이 아니라 법령 마련 등 선제적 조치를 단행해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기업-지역사회가 함께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대화의 자리를 자주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백양국 광양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수산화리튬뿐만 아니라 이차전지 관련 공장이 매우 빠른 속도로 들어서고 있고, 황화 리튬 공장 등이 앞으로 더욱 들어설 예정인 만큼 더 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법적·제도적 관리가 지금부터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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