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이탈 100일…전문의 중심병원 의·정 ‘동상이몽’

전공의 이탈 100일…전문의 중심병원 의·정 ‘동상이몽’

기사승인 2024-05-30 11:00:02
5월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의료진이 나오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전공의 집단 이탈 100일째, 정부가 전문의 중심병원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궁극적으로 상급종합병원들이 전문의 중심병원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데는 정부와 의료계 간 이견이 없지만, 실현 가능성을 두고 의문이 제기된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본격적으로 대형병원의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 방안 논의에 착수했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의개특위) 산하 전달체계·지역의료 전문위원회는 28일 2차 회의를 열어 상급종합병원 운영 혁신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상급종합병원이 전공의에게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전문의 중심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의료 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이 진료량을 늘리기보다 중증 진료에 집중하면서 숙련된 인력에 투자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전문의 중심병원 전환의 첫 단추는 의대 교수 증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빅5 병원’(삼성서울·서울대·서울아산·서울성모·세브란스병원) 의사 7000여명 중 39%에 달하는 전공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이들이 하던 진료를 교수 등 전문의가 맡아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인다는 게 정부의 구상이다.

또 전공의 위임 업무를 축소하는 시범사업을 내년부터 국립대병원과 지역 수련병원을 중심으로 적용할 예정이다. 전문의가 많을수록 수가(의료행위 대가)를 더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아울러 전공의 대신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대형병원이 경영난으로 인해 문을 닫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연말까지 건강보험 재정 투입을 이어갈 방침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통해 “전문의 중심병원을 하루아침에 이루기는 어렵다. 중장기 과제가 될 것”이라며 “의료전달체계 개편이 함께 이뤄져야 하고, 병원 인력 구조 변경도 필요하기 때문에 현장에 잘 정착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전공의 수련체계와 수가체계 개편이 맞물려 돌아가야 완벽한 전환이 가능할 것”이라며 “의개특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선정한 만큼 의료계와 충분한 협의를 진행하겠다”고 덧붙였다.

5월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 로비에 걸린 병원 홍보물 옆으로 의료진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정부는 전문의 중심병원을 늘리기 위해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정작 의료계는 떨떠름한 모습이다. 전문의가 되려면 의대 입학부터 전공의 수련까지 10년 이상이 걸린다. 세부분과 수련 과정을 마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그 사이 정권이 바뀌면 연속적인 투자가 어려울 것이란 회의적 시각이 적지 않다.

곽재건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소아흉부외과)은 2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공의 근로·교육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전문의 중심병원은 결국 가야 할 길이지만, 전공의들이 병원 밖으로 나간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여러 조건이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세부분과 전문의 양성 방안은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곽 부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대 어린이병원을 찾아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는 진료과의 정원을 늘려주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사람이 없다”며 “당장 인력이 없는데 가능할지 의문이다. 서울대병원 소아흉부외과엔 5년 만에 펠로우 2명이 들어왔다”고 했다.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사태가 해결돼도 정부 정책에 불신을 갖게 된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전문의로 일할지는 미지수다. 채동영 대한의사협회 홍보이사는 29일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 비대위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젊은 의사들이 병원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는 궁극적 요인은 정부에 대한 불신이다”라고 짚었다.

채 이사는 “필수의료 진료과를 꼭 가겠다던 실력 있는 선배들이 있었다. 실제로 필수의료과를 선택했는데 사직 후 미용병원에서 일하고 있더라”라며 “필수의료과에서 본인이 원하는 진료가 가능할 거라는 확신이 없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를 포함한 젊은 의사들은 이제껏 정부가 약속을 지킨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느낀다. 정책의 방향성과 근거, 부작용을 함께 설명하는 것이 당연한데 장점만 얘기하는 정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나”라며 “정부가 아름다운 약속이 적힌 어음을 내밀어도 더 이상 믿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전공의들을 돌아오게 하려면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주장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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