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院) 구성의 핵심인 국회의장단과 주요 상임위원장단 선출이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몫으로 강행 처리됐다. 이대로면 과반의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독식 아닌 독재 수준”이라는 평가와 함께 역풍 가능성이 거론됐다.
민주당은 지난 10일 본회의를 열어 야당 단독으로 11개 상임위원장 선출안을 의결했다. 민주당이 차지한 주요 상임위원장은 대통령실을 담당하는 운영위, 법안 처리의 ‘최종 관문’이자 특검을 담당하는 법제사법위, 언론 관련 입법을 관장하는 과방위 등이다. 지난 5일 여당이 불참한 가운데 사상 첫 단독 개원을 한 데 이어 야당이 상임위원장 선출을 단독으로 처리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여야는 본회의에 앞서 원 구성을 둘러싼 막판 협상에 나섰으나,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 오후 8시24분 최종 협상 결렬 직후 “법사위를 국민의힘에게 넘겨주면 (민주당에게) 운영위와 과방위를 넘겨줄 수 있다고 했으나 (민주당이) 단칼에 거부했다”고 밝혔다. 결국 본회의는 여당 불참 속 야당 주도로 열렸다. 이날 국회 본회의는 당초 예고된 개의 시각보다 4시간 늦은 오후 9시에 개최됐다.
민주당은 이번주 중 나머지 7개 상임위 위원장 선출을 벼르고 있다. 국민의힘 몫으로 남겨진 7개 상임위는 정무위·기획재정위·외교통일위·국방위·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정보위·여성가족위 등 7곳이다. 민주당은 여당이 협조에 나서지 않을 경우, 해당 상임위 역시 자당 몫으로 가져가겠다고 예고했다. 황태순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지난 2년 간 국민의힘이 법사위에서 게이트 키핑 역할을 하면서, 민주당은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민주당으로서 이번 원 구성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기회”라고 분석했다.
국민의힘이 7개 상임위를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여당은 민주당의 행위를 ‘입법 독주’라고 규정하며 국회 ‘보이콧’에 나선 상태다. 국민의힘 의원 일동은 전날 국회 의사과에 상임위 배정에 일괄 사임서를 제출했다. 이날에는 단독 상임위원장 선출에 협조한 우원식 국회의장에 대한 사퇴 촉구 결의안을 제출했다. 또 당분간 매일 의원총회를 열고 대야 방향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할 경우, 22대 국회 개원부터 여야 강 대 강 대치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민주당은 소관 상임위 구성을 마치는대로 21대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채상병 특검법 △방송3법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 △민생위기극복 특별조치법 등을 6월 임시국회 회기 내에 처리할 계획이다. 6월 임시회 회기 중 24~25일 교섭단체 대표 연설과 26~28일 대정부 질문 등 의사일정도 추진할 방침이다. 상임위에서는 각 부처 업무보고를 요구하고 불응 시 청문회도 추진하기로 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윤석열 정부 임기가 남은 3년 동안 야당은 할 수 있는 모든 공격을 펼칠 것”이라며 “민주당의 핵심 상임위 독식은 일종의 신호탄”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역풍 가능성’은 야권의 불안 요소다. 민주당은 지난 21대 국회 원구성 당시 여야 이견에도 불구하고 단독 원 구성을 강행했다. 당시 상임위원장 의사봉을 모두 차지한 민주당은 이른바 ‘임대차 3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등을 밀어붙였다. 이후 비판 여론이 일면서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참패했고, 21대 국회 후반기 7개 상임위를 국민의힘에 내줬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의 현 행보는) 독식이 아니라 독재 수준이다. 상임위 배분을 위한 관례상 말이 안 된다”며 “역풍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