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선별검사 급여 확대…LSD 환자 숨통 열였다

신생아선별검사 급여 확대…LSD 환자 숨통 열였다

기사승인 2024-06-21 11:01:01
신생아 선별검사는 출생 직후 신생아의 발바닥에서 혈액을 채취해 진행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저는 혼자 숨을 쉴 수도, 걸을 수도 없습니다. 조금만 더 빨리 병을 발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쉬움이 큽니다.”

김동호 한국폼페병환우회 기획실장은 지난 1998년 리소좀 축적 질환(Lysosomal Storage Disease, LSD) 중 하나인 폼페병을 진단 받았다. 당시 국내엔 리소좀 축적 질환을 진단하는 효소활성도 검사법이 없어 일본까지 건너가야 했다. 김 기획실장은 “근육에 힘이 없어 달리기, 계단 오르기 등 기본적인 활동이 어려웠다”며 “증상이 나타나고 한참 지나서야 폼페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설명했다.

폼페병은 당(글리코겐) 분해에 필수적인 효소가 선천적으로 결핍돼 생긴다. 과도한 양의 당이 근육세포에 쌓이면서 근육이 약해지는 진행성 신경근육질환이다. 영아기에 발병하면 심장 근육이 힘을 잃어 심부전 등으로 인해 생명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 근육 손상이 빠르게 일어나기 때문에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질환이다.

김 기획실장은 환우회 활동을 하면서 조기 진단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껴왔다. 그는 “환우회 등록 환자 대부분은 선별검사를 받지 못했거나 신체 이상소견이 나타난 뒤에 확진을 받았다”며 “환우회 자체 조사에 따르면 환자들은 진단을 받기까지 평균 7~8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랜 시간이 지나 병세가 악화되면 기대할 수 있는 치료 효과가 크지 않다”며 “장애와 함께 뒤따르는 막대한 의료비용은 가정을 벼랑 끝으로 내몰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절박한 호소를 전한 환자들의 삶은 올해 들어 보건복지부가 리소좀 축적 질환에 대한 신생아 선별검사를 급여항목에 넣으면서 숨통이 트였다. 선별검사는 생후 48~72시간의 모든 신생아를 대상으로 증상 여부에 관계없이 시행하는 공중 보건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이번에 폼페병, 뮤코다당증(1·2형), 고셔병, 파브리병 등의 효소활성도검사가 항목에 추가됐다. 이들 질환은 국내에서 허가된 치료제가 있는 만큼 조기에 진단만 받으면 획기적 증상 개선이 가능하다.

김 기획실장은 “최근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해 치료를 잘 진행했다는 한 아이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며 “유전성 희귀질환에 대한 검사 급여 확대는 아기의 건강과 발달을 지키는 데 큰 힘을 주고,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긍정적 정책 방향”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선별검사는 유전성 희귀질환의 유병률을 파악하고 예방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도 기여도가 높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료 전문가들은 선별검사 급여 확대에 따라 ‘진단 방랑’을 겪는 리소좀 축적 질환자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2018년 희귀질환 의료비 지원사업 대상자 1705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벌인 결과, 증상 자각 후 진단을 받는 데 10년 이상 소요된 환자가 6.1%였으며, 이 중 16.4%는 4개 이상의 병원을 찾아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적지 않은 환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곳의 병원을 전전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이정호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리소좀 축적 질환은 전신에 다양한 증상이 발생하기 때문에 임상 양상만으로 병을 진단하기 어렵다”며 “그간 조기 진단 미충족 수요가 있었는데, 선별검사가 고무적인 치료 환경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선별검사의 취지를 살리려면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질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접근성이 확보됐다”면서 “새로 진단된 환자들이 바로 다음 조치에 들어갈 수 있도록 각 질환과 치료 과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짚었다. 

이어 “상당수 희귀질환은 증상이 바로 나타나지 않아 평생 추적관찰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정부 중심의 사후 모니터링 시스템이 부재해 환자가 검사를 받지 않거나 치료를 멈춰도 찾기가 쉽지 않다”며 “선별검사로 발굴된 환자가 관리를 이어가도록 국가적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박선혜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