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저출생 대책 일환으로 대학 학부 입학부터 석사, 박사 학위 취득까지 최대 5.5년 내 마칠 수 있는 통합과정 도입이 추진한다. 학·석·박사 통합과정 신설로 조기에 석박사급 인재를 양성하고 빠른 사회진출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경쟁력 향상을 위해 고급 인재 유치에 나서는 세계 흐름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이를 두고 고급인재 양성에 앞장서야 할 교육부가 저출생 대응 제시에 급급해 스스로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출생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가 19일 관계부처 합동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한 대책’을 발표한 가운데 교육부는 학·석·박사 통합과정을 신설하고 수업 연한을 단축하기 위해 고등교육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도 학·석사, 석·박사 통합 과정으로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다만 대학에 입학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는데 보통 8년 이상 걸린다. 교육부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이를 5.5년까지 줄여 사회 진출 시기를 약 2~3년가량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학계 일각에선 교육부의 이런 정책 방향에 대한 쓴소리가 나온다.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급인재 양성에 나서야 하는 소관부처로서 목적과 방향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모 대학 교수 A씨는 “대학 교육의 질 하락에 이어 박사 졸업장을 자격증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정부가) 대학 교육에 대해 내용이나 품질을 살피기보다 자격증 개념의 졸업장, 학원 같은 강의라고 공식화한 것 아닌가. 속성으로 운전면허를 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석·박사급 핵심 고급 인재 양성은 전세계 관심사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도 빅테크를 중심으로 이러한 고급 인재를 통해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서울시는 내년부터 5년간 지역 내 54개 대학에 6500억원 이상 투자해 세계적 수준의 기술 혁신 전초기지 육성에 나선다고 밝힌 바 있다. 이공계 석·박사 인력과 외국인 고급 인재 유치 미래 핵심 인재 3200여명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더구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까지 계획하는 사례도 많지 않다.
이런 방안이 저출생의 직접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는 게 학계의 공통된 생각이다. 학·석·박사 통합과정에 공감하는 이들 역시 저출생 대책과의 관계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A교수는 “학·석·박사 통합과정이 결혼, 출생 문제와 얼마나 큰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유혜정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박사도 “박사 학위 취득은 개인에 따라 일정이 달라진다”며 “학·석·박사는 필수 교육과정도 아닌데 이수 과정을 줄이는 것이 저출산 해소에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물론 석박사 통합 5년 과정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커지진 않을 것이라 본다. 외국에서도 석박사 통합 과정이 대세”라며 “이런 방안이 실제 이뤄진다면 박사를 도전하는 사람이 많이 생길 것이고, 그만큼 전반적인 실력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박 교수는 “인재 역량 문제와 같은 우려는 대학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라면서 “다만 저출생 대책과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학력이 높을수록 결혼 비율이 낮다는 조사 결과도 이같은 정책이 저출생 대책으로 적합한지 의문을 더한다. 통계청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30~54세를 대상으로 실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 저학력 여성의 미혼율은 15.9%인데 반해 고학력 여성의 미혼율은 28.1%로 2배가량 높았다.
박 교수는 “상관관계만 보면, 여성의 대졸 비율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하락한다”며 “학업 기간 출산 계획을 세우기 쉽지 않고, 공부를 마치고 나면 가임연령 후반기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마도 (교육부 발표는) 석·박사 통합으로 박사 학위 취득 기간이 짧아지면, 결혼해서 출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논리로 보인다”며 “고학력, 고임금 수준에 부합할 정도로 여성이 아이를 출산해 육아하면 국가가 보상하겠다는 정책이 나오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