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양꿀 방치하면 농업도 죽어…인간 탐욕이 꿀벌 실종 초래”

“사양꿀 방치하면 농업도 죽어…인간 탐욕이 꿀벌 실종 초래”

한상미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장
“월동꿀벌 실종 문제에 ‘사양꿀 생산’ 밀접”
“가공식품에 천연꿀 사용…‘ESG’에도 적합”
“벌 공익 가치 73조…선진 자정 노력 배워야”

기사승인 2024-07-29 06:00:04
한상미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장(한국양봉학회장)이 지난 9일 서울 용산구의 한 회의실에서 쿠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과학적으로 꿀이 아닌 것을 법적으로 ‘꿀’이라고 하니 예상치 못한 문제점들이 현재에 터지고 있어요.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봄철 월동꿀벌의 실종이 전국적으로 발생하며 벌의 생태계가 위협받는 가운데 미래 식량난으로 인류에게 번질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화분매개 역할을 하는 꿀벌이 실종되며 농작물 생산이 줄고 식량 수급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한상미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장(한국양봉학회 회장)은 이 같은 문제가 사양꿀 생산과도 밀접하다고 분석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꿀벌의 먹거리인 밀원의 면적은 2020년대 들어 15만㏊ 정도로 줄었다. 47만8000㏊ 수준이었던 1970~1980년대와 비교하면 약 3분의 1정도다. 문제는 밀원이 줄어들며 벌에게 설탕 사료를 먹여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한 벌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벌에게 설탕을 먹여 만든 ‘사양꿀’의 유통량이 천연꿀을 뛰어넘었고, 생산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문제가 벌 생태계를 점점 좁히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과장은 “벌이 꽃에서 화분을 채취할 수 없을 시기에는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일부 농가에서는 설탕꿀(사양꿀)을 뜨는 데 동원 된다”며 “이 경우 벌들은 해충에 대응할 능력이 줄어들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사양꿀 생산에 겨울을 이겨내는 힘이 부족해지고 이미 내성이 강해진 기생충 ‘꿀벌응애’에 대항할 힘을 잃게 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립농업과학원이 전국 50개 이상 양봉농가를 분석한 결과, 모든 농가에서 약재 내성을 가진 꿀벌응애가 발견됐다.

때문에 약재 사용에 앞서 꿀벌이 스스로 치유할 능력을 잃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한 과장은 “꿀벌은 건강해지면 스스로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이 있다. 건강한 꿀벌은 응애 냄새를 맡고 밀랍 안에 있는 응애를 밖으로 보낸다”며 “꿀벌이 계속 약화되면 이런 능력을 상실한다. 응애가 너무 심해지면 그때 약재 방제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꿀벌 생태계 파괴를 이유로 사양꿀 생산과 유통을 근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지속되고 있지만, 사양꿀 생산 농가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양꿀 생산을 줄일 경우 양봉 산업에 피해가 온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사양꿀 생산이 지속되면 추후 국산 꿀 시장은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반박도 있다. 한 과장은 “꿀 대체품이나 수입산 꿀로 국산 꿀 시장의 혼란이 오기 전에 양봉농가나 산업계에서 건전한 성장 방향을 좀 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천연꿀을 활성화하면 꿀을 사용하는 식품기업들의 운영 측면에서도 긍정적 효과를 줄 수 있다. 한 과장은 “가공식품 등에도 사양꿀을 줄이고 천연꿀을 사용한다면 지속가능 경영을 위한 핵심요소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에도 적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지난해 발표한 ‘꿀벌의 공익적 가치 및 양봉 직불제 연구’에 따르면 꿀벌의 공익적 가치는 단순 화분매개를 뛰어넘어 산림의 유지가 국민에게 주는 생태적, 환경적 가치인 ‘산림의 공익적 가치’까지 추정했을 때 73조원을 넘는다. 농작물에 한해서만이 아닌 생태계 전반으로 따진다면 꿀벌이 생태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해외의 경우 벌 생태계를 망치는 사양꿀을 국내와 달리 꿀로 보고 않고 있으며 양봉 관련 협회 차원에서도 자정능력을 키우고 있다. 한 과장은 “해외에서는 사양꿀 유통시 법에 저촉되기도 하지만, 선진국으로 갈수록 신뢰사회다 보니 철저하게 브랜드 관리를 하는 등 자정능력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후가 급격히 변하며 해외에서도 뚜렷한 해충 방제 약재가 나오지 않아 ‘어떻게 꿀벌을 관리를 해야 하느냐’라는 말이 나온다. 현재의 집단 실종 등 문제는 결국 사람이 너무 탐욕을 부린 결과이고, 원점으로 돌아가 반려동물처럼 꿀벌의 동물권까지 보장을 해야 한다는 바람이 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생태계를 위해서도 사양꿀 근절 등 자정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 과장은 “꿀 자체가 인간이 벌에게 빼앗아 오는 식품”이라며 “생태계를 해친 결과가 인간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기 전에 다방면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건주 기자
gun@kukinews.com
김건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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