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도 줄었는데… 술값이라도 내려야 장사하죠.”
지난 16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별빛거리 상권 일대에는 ‘소주·맥주 2000원’이라고 적힌 배너가 점포 앞 곳곳에 놓여 있었다. 같은 날 구로구와 강서구 등의 주류 판매 식당에서도 생맥주 한 잔에 1990원부터 ‘진로’, ‘처음처럼’ 등 소주를 2000~2500원 사이에 판매하고 있었다. 관악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주민 이성민(26)씨는 “지인들과 만나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가 많은데, 입간판을 보고 술값이 저렴한 곳을 많이 가게 된다”고 말했다.
물가가 오르며 소비자들의 외식 소비 경향이 줄어드는 가운데, 자영업자들도 주류 마진을 최소화하며 고객을 모으는 데 나서고 있다.
이날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서비스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평균 비빔밥 가격은 1만885원을 기록했다. 삼계탕은 1만7038원, 칼국수는 9231원, 자장면은 7308원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 지난 6월 기준 외식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3.0%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2.4%)보다 0.6%p 높은 셈이다.
‘회식의 대명사’였던 삼겹살도 2만원을 넘어섰다. 주류업계도 지난해 주류 출고가를 7%가량 인상하며 식당에서는 소주 판매가격을 1000원씩 올린 병당 5000~6000원에 판매했었다. 삼겹살 2인분에 소주 각 1병을 먹게 되면 5만원을 훌쩍 넘는다.
이처럼 외식 가격이 비싸지며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 이에 매출이 줄어든 자영업자들이 주류 가격을 대폭 줄인 것이다. 주류 가격을 낮춰 경쟁력을 올리고 단골이나 지역 주민들을 오게 해 매출을 유지하겠다는 취지다.
관악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이곳뿐만 아니라 서울 곳곳의 식당 상권이나 자영업자 커뮤니티 등을 보면 주류 가격을 할인하는 곳이 많아졌다”며 “매출이 줄어드는데 주류 가격이라도 내려야 손님이 온다. 당분간은 할인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주류업계가 출고가를 내린 것도 영향을 미쳤다. 참이슬을 판매하는 하이트진로는 지난해 12월 소주 제품의 출고가를 10.6% 낮췄다. 정부가 소주와 국산 증류주에 세금 인하 효과가 있는 ‘기준판매비율’을 도입한 후 시행한 조치다. 롯데칠성음료도 처음처럼·새로의 출고 가격을 각각 4.5%, 2.7%씩 내렸다.
이에 대해 소비자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구로구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이현(32)씨는 “1인당 1병으로 제한하고 이후에는 원가로 판매하는 곳들도 많다”면서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렴하게 먹을 수 있으면 할인하는 식당을 찾아가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외식업계에서는 이에 대해 논쟁이 일고 있다. 인근 점포들끼리 경쟁만 하다 상권이 무너진다는 의견과 궁여지책이며 마케팅 전략이라는 의견으로 나뉘고 있다.
서울에서 삼겹살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B씨는 “처음에는 싸다고 소문이 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술만 시키고 기본안주만 리필하는 소비자가 많아질 것”이라면서 “경쟁력 강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근 점포끼리 경쟁만 부추기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주류 할인을 시작한 자영업자 C씨는 “자영업자 사이에서도 ‘이러다 다 같이 망한다’, ‘제 살 깎아먹는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물가가 너무 올라 음식 판매라도 늘리지 않으면 장사를 하기 어렵다. 궁여지책의 심정으로 무엇이든 해보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