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돈벌이 수단’인가 [취재진담]

환자가 ‘돈벌이 수단’인가 [취재진담]

기사승인 2024-08-21 06:00:16
지난 2018년 1월 47명이 숨지고 145명이 다치는 등 사상자 192명을 낸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는 인재(人災)이자 대표적인 사무장병원의 폐해로 기록됐다. 그렇게 참사가 발생한 지 6년7개월, 사무장병원이란 ‘악습의 고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사무장병원이란 의료법상 의료기관을 개설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의료인 등을 고용해 의료인이나 비영리법인 명의로 개설·운영하는 불법 요양기관을 일컫는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지난 2009년부터 2023년까지 15년간 적발된 불법 개설기관은 1717개소다. 이들 기관으로부터 환수가 결정된 금액은 무려 3조3762억원에 달한다.

사무장병원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경쟁적으로 환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편법을 동원한다. 환자 치료는 뒷전이고 항생제, 수면제 등 불필요한 의약품을 과다 처방받도록 유도하는 등 의약품 오남용 문제도 심각하다. 이 같은 행태는 환자의 건강을 갉아먹는다. 불법 증·개축으로 몸집을 불리며 소방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아 환자의 안전마저 위협한다.

사무장병원을 차려 적발돼 폐업해도 다시 같은 방식으로 여는 일이 빈번하다. 건보공단에 의하면, 지난 2009년~2021년 적발된 불법 개설기관 가담 인원 2564명 가운데 약 30%는 사무장이나 명의 대여자 등으로 개설·운영에 재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세 차례나 불법 요양병원을 개설했다가 관계당국에 적발된 경우가 있었다.

불법 개설기관은 환자 피해뿐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끼치지만 환수는 쉽지 않다. 지난 2018년부터 2023년 8월까지 요양급여 부정 수급이 적발돼 환수 조치된 불법 개설기관은 329곳으로, 환수 금액만 1조2260억원에 이르지만 징수율은 7.18%에 그쳤다. 수사 주체인 경찰은 제한된 인력으로 많은 사건을 처리해야 하다 보니 장기간 집중해서 들여다봐야 하는 불법 개설기관 수사에는 한계가 있다. 수사기관이 사무장병원을 수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1.8개월이다. 길게는 4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폐업하거나 명의를 바꿔 잠적하고, 재산을 숨겨 도주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2009년부터 2021년까지 불법 개설기관으로 의심돼 수사 중 폐업한 기관은 1404곳이다. 이혼한 배우자에게 고급 주택을 매매하게 하거나, 토지를 자녀에게 증여하는 등 재산은닉 방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건보공단은 변호사, 보건의료 전문가, 전직 수사관 등 여러 조사 인력을 두고 불법 개설기관 단속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강제수사권이 없어 늘 한계에 부딪힌다. 건보공단이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을 두려는 이유다. 건보공단은 특사경이 도입되면 수사 기간이 약 3개월로 줄어들고, 2000억원가량 재정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특사경 도입은 안갯속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지지부진한 논의 속에서 결국 국회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의료계의 극심한 반대에도 부딪혔다. 이후 22대 국회에서 건보공단에 특사경을 두는 ‘사법경찰직무법’ 개정안이 다시 발의됐지만, 전공의 집단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 사태와 연금개혁 등 여러 현안에 밀려 계류 중이다.

불법 개설기관을 엄벌하지 않고 이대로 판치게 놔두면 오롯이 그 피해는 환자들에게 돌아가고, 국민들이 낸 소중한 보험료는 사무장들의 주머니로 들어갈 것이다. 건보공단 특사경 도입으로 불법 개설기관이 척결돼 환자들이 더 이상 수익 창출을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되지 않길 바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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