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따라 태양광 발전사업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태양광 이격거리(도로·주거지역 등으로부터 최소한의 거리) 규제 완화에 대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다만 지방자치단체별로 관련 규제가 상이한 데다 강화·완화 여부를 놓고 지역 내 갈등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어 중앙정부가 법제화를 통해 더 뚜렷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22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환경단체 기후솔루션과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경남햇빛발전협동조합 등(이하 환경단체)은 이달 8일 헌법재판소에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들은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는 유사한 사례를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도 어려워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며 오랫동안 비판을 받아왔다”면서 “이러한 규제가 태양광 발전사업자에겐 직업의 자유와 평등권을, 일반 시민들에겐 환경권과 행복추구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이유에서 청구했다”고 밝혔다.
여러 지자체에서는 태양광사업 확대를 위해 이격거리 규제를 완화하는 모습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동시에 태양광사업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남 해남군은 도로 이격거리를 500m에서 100m로 완화하고 농어촌도로 제한 규정을 삭제했다. 주민이 지분참여를 통해 주민 지분참여사업, 수상태양광 등 사업에 동참할 경우 설치가 가능하도록 규정의 폭을 넓혔다.
전북 임실군은 기존 ‘주거밀집지 300m 이내(주민 100% 동의 시 예외)’에 더해 자연 지형물 등에 의해 마을에서 (태양광발전설비가) 조망되지 않을 경우 설치 허가 가능하도록 예외 조건을 마련했다. 지난달에만 9곳의 지자체가 도시계획조례 개정을 통해 이격거리를 완화했다.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측은 “전 세계가 기후위기 대응 수단으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외치고 있다”면서 “농민과 귀농 청년의 태양광 사업 참여를 보장하는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규제를 풀지 않거나 오히려 강화하는 지자체도 있다. 경남 진주시는 지난 6월 조례를 개정해 기존 10호 이상 주거 지역과 도로로부터 500m 떨어지도록 한 태양광 발전설비 허가 기준을 10호 미만 주거지역으로 확대 적용했다. 이는 앞서 환경단체의 헌법소원심판 청구로 이어진 계기이기도 하다.
또, 경북 청도군의 경우 도로 및 철도, 주거밀집지 모두 300m로 적용되던 이격거리가 500m로 늘어났으며, 전남 강진군은 군 내 주소지를 두고 실거주한 이들에 한해 발전시설 허가가 가능하도록 기준을 신설했다.
이들 지자체는 농지 감소, 자연 훼손 등을 이유로 규제를 쉽게 완화하기엔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8월 조례 개정으로 도로·주거밀집 지역 500m 이내 이격거리를 250m 이내로 완화했었던 경남 창녕군은 이격거리를 다시 늘릴 계획이다. 창녕군 관계자는 “규제 완화 이후 신청 및 민원이 급증하고, 태양광발전설비 증가로 인해 농지가 감소했다”면서 “재생에너지 사용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광 설치 신청자가 급증한 가운데 이들 중 90% 이상이 군민이 아닌 외지인들이었기 때문에 군민들의 생활터전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다만 해당 지역 환경단체 등에서 농지전용 면적 중 태양광 비중이 오히려 감소했다며 반발하고 있는 데다, 군의회 내에서도 조례 개정 후 1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등 반응이 나와 추이를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이격거리 규제를 완화하는 데 반기를 든 주민 집단도 있다. 지난해 11월 이격거리 규제를 도로 800m, 주거밀집 지역 500m 이내에서 각각 100m, 200m로 완화하려던 경남 함양군은 함양참여연대 등 지역단체의 반발에 부딪혀 300m, 400m로 완화 폭을 줄였다.
당시 함양참여연대는 “군민 다수가 태양광사업이 심각한 난개발로 인한 지리산권의 원시 자연경관의 훼손으로 함양군의 가치 하락과, 대규모 농지의 잠식으로 인한 농민의 생존권 위협을 근심하고 있다”면서 “이격거리 완화로 농촌공동체와 생태계의 훼손 등 전통적 환경이 파괴되고 특정자본의 무분별한 난개발을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통상자원부를 대표로 하는 중앙정부는 지난해 1월 지자체별 주거지역 이격거리를 최소 100m로 제한하고 도로 이격거리는 설정하지 않는 등 ‘재생에너지 입지설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지만,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지자체 조례에 맡긴다는 명목 하에 세부 내용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익명을 요청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역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지자체 조례를 통해 이격거리를 조정한다는 의도는 옳지만, 지자체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예외 사례들도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면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가 정권의 변화 등과 관계없이 일관되게 성장하려면 여야가 머리를 맞댄 법안의 법제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신재생설비 설치를 위한 개발행위허가 시 이격거리 설정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공공복리 유지 등 대통령령으로 정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격거리 설정을 제한하는 한편, 이격거리 및 설정 절차는 대통령령을 통해 구체화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 의원은 “명확한 기준 없이 지자체별로 최대 1km에 달하는 이격거리를 규정하고 있어 재생에너지 보급을 가로막고 있다”고 취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