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응급실…코로나19 환자 밀려들고, 중증환자는 ‘뺑뺑이’ 돈다

위기의 응급실…코로나19 환자 밀려들고, 중증환자는 ‘뺑뺑이’ 돈다

기사승인 2024-08-23 06:05:04
서울 시내의 한 대형병원. 사진=곽경근 대기자

최근 코로나19 유행과 맞물려 가벼운 발열 환자들이 응급실로 몰리며 경증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중증 환자들은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응급실 뺑뺑이’를 도는 등 응급의료 전달체계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의정갈등 상황까지 장기화되며 남은 의료진들은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다. 현장에선 “뭐든 빨리 추진해달라”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2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응급실 병상을 축소해 운영하는 기관은 전체 408개소 중 6%인 25개소로 나타났다.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전공의들이 이탈하기 전인 올해 2월21일만 해도 응급실 병상을 축소한 기관은 6곳에 그쳤다. 

응급실 병상을 축소한 병원이 전공의 이탈 이전보다 4배나 늘었지만, 응급실 이용 환자는 증가했다. 8월 셋째 주 기준, 응급실 평균 내원 환자는 1만9784명으로, 평시 대비 111% 수준이다. 

경증 환자들이 다시 응급실을 찾고, 최근 코로나19 환자도 늘어난 탓이다. KTAS(중증도 분류체계) 4~5에 해당하는 경증 환자와 비응급 환자는 전 주 대비 1.7% 증가한 8541명으로 평시의 103.1% 수준이다. 응급실을 이용하는 환자 중 경증·비응급에 해당하는 경우가 약 42%에 달한다. 코로나19 유행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응급실 내원 코로나19 환자 95% 이상이 중등증 이하 환자였다. 

반면 응급 환자를 진료할 의사는 줄었다.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응급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전공의 약 500여명이 이탈하며, 이전과 동일한 형태의 진료를 제공하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응급 환자들이 병원에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사고도 이어지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서울소방지부는 지난 19일 응급실 뺑뺑이 관련 첫 성명서를 내고 “정부와 소방청은 구급차에서 죽어가는 국민을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라며 “올해 상반기에 구급차 뺑뺑이로 사망에 이른 국민의 수가 작년 수치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지난 21일 천안에서 60대 여성이 온열질환으로 숨진 가운데 병원 19곳에 전화를 돌렸지만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 1시간 동안 구급차에서 시간을 허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에는 충북 음성군에서 분만 통증을 호소하던 한 임산부가 병원을 찾아 헤매다 구급차 안에서 아이를 낳았다. 당시 분만이 가능한 천안과 청주 지역 내 병원 4곳을 물색했지만, 병상이 없거나 수술할 의사가 없었다. 가까운 종합병원인 충북대병원 응급실은 운영이 중단된 상태였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낙상 사고 이후 응급실 22곳에서 거절당했다는 경험담을 밝히기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전날 새벽에 넘어져 이마가 깨졌다. (소방대원이) 새벽에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일으켜 갔는데 응급실 가려고 22군데 전화했는데 안 받아줬다”며 “자주 다니던 병원에 신분을 밝히고 갔더니 의사가 없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라고 호소했다.

현장에선 응급실 과밀화 해소를 위해 분산 대책이 조속히 추진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공보이사(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유행으로 경증 환자가 늘어난 건 현장에서도 체감된다. 응급실 상황이 어려운 건 모두가 아는 얘기 아닌가”라며 “응급실 경증 환자 본인부담금 인상이든, 발열클리닉 운영이든 정부가 빨리 뭐라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호소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회장은 “의정갈등 상황 전에도 응급실은 한계에 가까울 정도로 운영돼 왔는데, 전공의들이 빠지면서 부담이 가중됐다. 6개월을 버틴 것이 기적”이라며 “중증 환자 치료 여력이 바닥났다. 경증 환자들에 치여서 중증 환자를 못 보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사고가 터질까봐 걱정이 크다”라고 토로했다.

복지부는 경증·비응급 환자들을 동네 병·의원으로 분산해 중증응급 환자 진료를 위한 여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경증 환자와 비응급 환자가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를 이용한 경우 외래진료 본인부담분을 현행 50~60%에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또 응급실 전문의 진찰료 추가 상향, 응급의료센터 전담 인력 인건비 지원 강화 등 현장 의료진에 대한 지원을 확대한다. 코로나19 유행에 대응해 공공병원 등에서 야간·주말 발열클리닉도 운영하기로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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