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54)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54)

마티스가 결혼 예물을 팔아서 산 세잔의 누드

기사승인 2024-09-09 09:24:21
서양미술에서 누드는 중요한 주제이다. 인상주의의 누드라면 풍만한 여인이 부드러운 밝은 빛으로 둘러싸인 르누아르가 연상된다. 마티스가 자신의 소장품 중 가장 아꼈던 것은 <목욕하는 세 여인>을 그린 세잔의 작은 누드화였다. 마침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있어 궁금하던 이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 목욕하는 세 여인, 1879~82, 캔버스에 유채, 파리 시립 현대미술관

육중하고 기하학적 형태인 목욕하는 세 여인들은 두 그루의 나무에 의해 마치 틀에 갇힌 듯 녹색의 양식화된 환경이 배경이다. 

세잔의 누드에서 인물들이 육중하게 보이는 이유는 그의 독특한 스타일과 접근 방식 때문이다. 세잔은 전통적 사실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와 색채를 강조했다. 그는 인물의 정확한 비율보다는 그들이 차지하는 ‘공간과 그 공간 내에서의 존재감’을 표현하려 했다.

또 다른 이유는 그의 ‘붓질과 색채를 사용하는 방식’이다. 그는 종종 두꺼운 붓질과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인물의 형태를 강조하였다. 이는 당시 매우 혁신적이었으며, 후에 많은 현대 미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마티스는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1899년 볼라르 화랑에서 <목욕하는 세 여인>을 구입하였다. 마티스는 이 작품을 사기 위해 부인의 결혼 예물까지 팔았으며 죽을 때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마티스는 세잔의 푸른색과 녹색을 대표작인 <푸른 누드>의 주된 색조로 택했다. 또한 피카소도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위 그림의 뒤돌아 앉아 있는 여인의 포즈를 응용했다.  

영화감독들은 그림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특히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빌리 밀리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23아이덴티티>에서 24개의 해리성 인격 장애를 가진 제임스 맥어보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는 세 소녀를 납치해 동물원 지하에 가두어 놓는다. 그와 상담을 하는 심리학자가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세잔의 <커다란 목욕하는 사람들>을 감상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감독이 왜 세잔의 누드를 보여주었는지 퍼즐을 맞춰보았다. 그림의 주조색인 푸른색과 녹색은 동물원으로, 틀에 갇힌 듯한 누드는 납치한 소녀들을 창고에 가두고 겉옷을 벗게 만드는 범죄자의 행태와 연관된다고 추정된다.

세잔은 초기작에서 살인과 납치 등을 주제로 성격 장애와 기질 장애 등 열등감과 강박이 표출된다. 사생아라는 태생적인 제약이 작품 전반에 우울증으로 드리워져 있다.   

폴 세잔, 전원시, 1870, 캔버스에 유채, 오랑주리 미술관, 파리

세잔의 초기 누드인 이 작품은 두껍고 가득 차 더 이상 수용할 수 없는 포화상태다. 풍경을 배경으로 옷을 입은 두 남자와 세 명의 여인 누드이다. 이는 몇 년 전에 서양미술사 최대의 스캔들로 유명해진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세잔의 친구 에밀 졸라는 세잔을 파리에 오도록 추천했고, 그가 파리에 왔을 때, 마네도 소개해주었다. 그는 정중한 대접을 하는 마네에게 홀딱 반했지만 천성적인 수줍음 때문에 그와 가까이할 수는 없었다. 세잔은 <모던 올랭피아>로 마네를 오마주하기도 했다.

오른쪽 사람이 탄 작은 배에는 길쭉한 모양의 덧문 형태로 항해용 딩기를 그렸으며, 그 그림자는 양쪽 둑에 어려 비친다. 이 작품은 누드화라기보다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를 표현한 목가적인 풍경화에 더 가깝다.

세잔은 파리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지만, 그의 작품은 누구에게도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금도 세잔이 무얼 의도했는지 자세한 설명을 듣지 않으면 세잔의 작품이 왜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평론가들의 혹평은 세잔에게 상처만 주었고, 1883년 고향인 엑스로 돌아가게 되었다.  

폴 세잔, 세 명의 욕녀, 1874~75,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20세기 초, 화상 볼라르(Ambroise Vollard)에 따르면, 이 작은 작품은 1876년 화상 빅토르 쇼케(Victor Choquet)가 세잔을 만난 후 구입한 세잔의 첫 번째 그림이다. 쇼케는 세잔의 그림을 32점 정도 소장하고 있었다. 이 그림은 세잔을 위한 쇼케의 우정과 무조건적인 지원의 첫걸음이었다. 

1876년, 세잔은 르누아르 덕분에 인상주의 운동의 강력한 지지자이며 수집가인 쇼케를 만나 친구가 되었다. 쇼케가 파리 몽시니(Monsigny) 가에 있는 타운하우스를 인수했을 때, 세잔에게 두 점의 장식 그림을 오버도어에 그리도록 의뢰했다.

1890 년에서 97년 사이에 그려진 <공작이 있는 분수>와 <작은 배와 목욕하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쇼케는 이 작품들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애석하게도 1891년에 사망했다.  

폴 세잔, 작은 배와 목욕하는 사람들, 1890~97년 사이, 캔버스에 유채, 30x46cm, 오랑주리 미술관

세잔의 이 그림은 수십 년 동안 세 부분으로 나누어졌다가 1973년 말에야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 중 두 부분은 화상이자 수집가인 폴 기욤(Paul Guillaume)의 미망인 도메니카(Domenica)가 국가에 기증하였다.

프랑스 국립 박물관이 1973년에 분실된 가운데 부분을 구입하여, 비로소 원래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  

우리는 통상 기증을 한다면 대가 없이 무료로 양도한다고 이해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전문가들이 적절한 금액을 평가하여 보상을 한다. 그래서 미술관에서는 보상과 보관의 문제로 미술사적인 가치를 선별하여 기증을 받게 된다. 폴 기욤과 장 발터의 컬렉션이 기증될 때, 도메니카는 1960년 법령상 절차에 따른 보상을 받았다.   

<작은 배와 목욕하는 사람들>부분

<작은 배와 목욕하는 사람들>부분
 
폴 세잔, 목욕하는 다섯 명의 사람, 1900~4, 캔버스에 유채, 오르세 미술관

세잔은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배웠지만 구별되는 특징 때문에 사후에 후기인상주의로 분류되었다. 모네의 가벼운 투명함 대신 여러 번의 붓질로 색을 중첩시켜 신중함과 무게를 더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추상화가 카시미르 말레비치(Kasimir Malevich)는 1906년 세잔 사후에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자연물들의 추상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연물의 표면과 부피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세잔은 평생 200여 점의 남성, 여성 누드 묘사를 다뤘지만, 누드 모델을 직접 보고 그리지는 못했다. 1904년, 세잔의 고향인 엑스를 방문한 에밀 베르나르는 세잔에게 “어째서 누드 모델을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세잔은 “나와 같은 나이에는 여인을 그리기 위해 옷을 벗기는 것은 삼가 해야 하며, 부득이한 경우에 한 쉰 살쯤 여인에게 부탁할 수도 있지만, 엑스에서는 응할 사람이 없을 게 확실하다”고 했다. 대신 그는 아카데미 쉬즈(Academies Suisse) 시절 그린 데생을 참고하였다. 

세잔은 극단적으로 예절에 집착해 여인들과 마주 대하기를 조심스러워했다. 주일 미사에 두 번씩이나 참석하는 종교적 양심과 소신으로 스캔들을 일으키지 않도록 매우 신중했다. 수줍고 내성적인 세잔에게 누드는 중요한 실험 가운데 하나였고, 이를 통해 자신의 향수와 충동, 여체에 대한 내적 갈등을 표현하였다. 

도덕이나 법 그리고 사회 통념에 벗어나는 표현도 용인되는 유일한 분야가 예술이다. 그래서 예술을 통해 화가 자신은 물론 관람자의 심리적, 정서적 억압과 갈등을 표현하여 치유하는 것이 예술의 중요한 효능 중 하나이다. 세잔도 그랬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 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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