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51)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51)

피카소와 연인 페르낭드 올리비에 

기사승인 2024-08-19 10:25:20
​피카소, 화장, 1906, 캔버스에 유채, 53x31cm, 상파울루 아시스 샤토브리앙 미술관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노새에 짐을 싣고 스페인 피레네 산맥의 오지 마을 고솔(Gosol)로 10주간의 휴가를 떠났다.

그때 마을의 유일한 여관인 호스탈 칼 탐파나다의 1층에서 당시 24살의 피카소가 페르낭드 올리비에(Fernande Olivier)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다. 피카소에겐 올리비에가 공식적인 첫 연인이다.   

피카소, 페르낭드 올리비에, 1906, 출처 위키피디아

피카소는 평생 사랑했던 여인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올리비에와 7년간 격정적인 사랑을 했으며, 60여 점의 초상화로 뮤즈에 대한 모순된 감정을 담아냈다. 인간이기에 모순된 감정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고, 그 모순을 솔직하고 당당하게 드러낸 피카소였다.

평생 에너지가 넘치며 다작으로 알려진 피카소는 고솔에서 7개의 큰 그림, 12개의 중형 그림, 수채화, 구아슈 그리고 조각을 작업했다. 동명의 작품이 미국 버펄로 알브라이트 녹스 아트 갤러리에 있다.  

1904년 피카소는 스페인에서 보헤미안들이 모여 사는 파리의 몽파르나스 지역으로 이사하면서 평생 프랑스 아방가르드와 인연을 맺었다. 1906년 여름엔 그림을 팔아 고솔로 휴가를 떠났다.

파리의 번잡함과 경쟁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여인과 행복했던 피카소는 불우했던 청색시대를 마감하고 장밋빛 시대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피사체를 생생한 빨강, 주황, 분홍, 흙빛 톤으로 묘사했다. 올리비에는 <화장>에서 묘사된 두 여성의 모델이 되었다.  
 
피카소, 화장, 1906, 캔버스에 유채, 151.13x99.06cm, 버펄로 알브라이트 녹스아트 갤러리

이 그림은 ‘대조’에 대한 연구이다. 왼쪽의 인물은 누드이고 오른쪽의 인물은 거울을 들고 있다.

누드의 여인은 거울을 통해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러한 나르시시즘(Narcissism)적 행위는 오른쪽에 있는 옷을 입은 여성의 소심한 태도와 대조되는데, 그녀는 조용한 옆모습이다. 분홍색과 청색의 대조, 열린 형태와 닫힌 형체의 대조는 매우 의도적이다. 이 모티브는 이후 여러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되풀이된다.

피카소의 이중 초상화는 그 여주인공의 양면, 즉 관능적인 면과 겸손한 면을 이상화하고 있다. 

고솔에서 그는 좀 더 원시주의 스타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화장>과 같은 작품에서 인물을 거의 자연스럽게 다루던 방식에서 급격히 벗어났고, 인체의 양감과 비례도 판이하게 달라지게 되었다.

장밋빛 시대의 분홍색도 투박한 테라코타의 색으로 변했다. 이런 결정은 그가 큐비즘(Cubism, 입체주의)으로 나가는 길을 제시했다. 

피카소가 마티스를 의식하며 시작한 조각적 변형은 올리비에의 관능적인 육체에 대한 매혹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측된다. 동시에 그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본 출토된 지 얼마되지 않은 기원전 6세기~ 5세기의 이베리아 조각상에게서 강한 영감과 영향을 받았다.

청동기 시대와 로마 점령기의 이베리아 반도에서 만들어진 돌 조각들은 투박하면서도 가공되지 않은 순수함으로 인해 더욱 원초적이었다.  

피카소는 고솔의 교회에서 12세기의 마돈나를 보았다. 크게 그려진 눈과 흰색 얼굴로 된 다색의 마돈나는 강렬한 표현력과 호소력이 깃든 작품이었다. 오랜 시간의 벽을 넘어선 단순한 형태의 무표정한 조각상들은 피카소에겐 조상들이 자신에게 내려준 특별한 계시처럼 느껴졌다.

그는 그것들을 받아들여 그의 작품 세계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기폭제로 활용했다.

원시주의 조각상 앞에 앉은 파리 바토-라부아르의 피카소, 1908

피카소는 1904년부터 센 강의 세탁선처럼 어둡고 더러운 바토- 라브아르(Bateau-Lavoir)의 허름한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점차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마티스와는 작품의 경향이나 성격에서도 대조적이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미술에서 자극을 받으며 자신의 독자적인 양식으로 소화해가는 과정은 서로 비슷했다. 피카소는 마티스가 수집하던 원시주의 조각에서 답을 찾기 시작했다.   

말라간(Malagan), 20세기 조각된 목각, 채색 장식, 식물 섬유, 조개, 니스 마티스 미술관에 있는1930년대 말 마티스 수집품

마티스는 <화가의 노트>라는 글도 발표하였지만, 피카소는 자신의 스케치도 공개하지 않았다. 스페인 출신으로 아직 프랑스어에 익숙하지 못한 피카소는 논리적이며 차분한 말투로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 법률사무소 서기 출신의 마티스를 부러워하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피카소, 여인의 반신상(Buste de Femme), 1907년 6-7월, 캔버스에 유채, 66x59cm, 조르주 퐁피두 센터

피카소는 1906년부터1907년까지 9개월 동안이나 그렸다 지우는 과정을 반복하며 새로운 화풍을 모색하고 있었다.

<아비뇽의 처녀들>은 피카소 회화의 전환점이며 동시에 20세기에 회화가 갖는 가치의 분수령이 되었다. 이 작품은 변화를 실험하는 과정 중에 그려진 중요한 작품이다. 

<여인의 반신상>은 선과 형태의 파편으로 인체를 분해한 세잔의 영향으로 눈에 띄게 큰 부피의 옷 처리를 했다. 또한 옆모습에서 본 귀와 검은 아몬드 모양의 눈 사이의 왜곡을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길고 뾰족한 코는 빨간색과 파란색 줄무늬로 덮인 삼각형처럼 돌출되어 있다.

삼각형 모양의 코를 가진 타원형의 가면처럼 된 여인의 얼굴은 루브르와 고솔에서 만난 카탈로니아 로마네스크 예술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입증한다. 이렇게 준비된 다양한 소스들은 피카소를 입체파로 이끌 만큼 충분했다.  

세잔의 그림은 동시대에는 비판을 받았지만 현대에는 추앙을 받는다. 화면을 다루는 그만의 새로운 방식 때문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추구하던 빛에 의해 변화하는 눈앞에 보이는 대상의 외면을 초월하여,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자연의 본질적인 기하학적 구조를 깊이 통찰하였기 때문이다.  

세잔은 1904년 자신을 존경하는 후배 화가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연은 늘 원기둥과 구 그리고 원뿔로 봅니다. 적절히 배치된 사물의 면과 선은 구심점을 향해 움직입니다”라 말했다.

그는 사물의 외형을 단순화시켜 본질적인 형태를 찾아내 원형질의 추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르네상스 이래 수백 년 동안 세상을 보는 관점인 하나의 소실점에 귀결되는 선원근법을 과감히 파괴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시점이 한 화면에 공존하는 코페니쿠스적인 전환을 일으킨 화가가 바로 세잔이다. 그래서 피카소는 “세잔은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 했다.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1907년, 캔버스에 유채, 243.8x233.7cm, 뉴욕 현대 미술관

<아비뇽의 처녀들>의 가장 왼쪽에 서 있는 아가씨처럼 보이는 <여인의 반신상>에서는 형태와 색상의 단절이 명확하게 확인된다. 그러나 눈을 가리는 것처럼 보이는 검은색은 유혹적이라기 보다는 야만적인 성격을 풍긴다. 

다양한 양식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피카소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이었다. 길쭉하게 왜곡하여 인물을 묘사한 초기 청색시대, 고전적 조화를 보여주는 장밋빛 시대와 신고전주의 시대, 선과 형태의 파편으로 인체를 분해한 입체주의 시대 그리고 자유로운 드로잉으로 인간 내면을 표현한 초현실주의 시대의 인물상까지.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주변의 인물까지, 그의 일관된 주제는 인간에 관한 새로운 모색이었다. 인간은 모든 위대한 예술가의 공통된 주제이다. 

◇최금희 작가
최금희는 미술에 대한 열정과 지적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해 수차례 박물관대학을 수료하고, 서울대 고전인문학부 김현 교수에게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에서는 이현 선생에게서 르네상스 미술에 대하여, 대안연구공동체에서 노성두 미술사학자로부터 서양미술사를, 그리고 미셀 푸코를 전공한 철학박사 허경 선생에게서 1900년대 이후의 미술사를 사사했다. 그동안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통해 작가별로 그의 이력과 미술 사조, 동료 화가들, 그들의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관련된 소설과 영화, 역사 건축을 바탕으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현재 서울시 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쿠키뉴스=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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